‘성 중독’ 범행 주장, 아시아계 여성들 ‘성적 대상’ 격하
뉴욕·시카고·피츠버그 등서 총격사건 항의 집회
“트럼프 대선 패배 이후 아시아 혐오 대화 급증”
응답자 84%, 이번 총격사건 “코로나에 대한 보복”
한인 여성 4명을 포함해 아시아계 여성 6명이 숨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총격 사건이 아시아계를 표적으로 삼은 증오 범죄라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뉴욕타임스(NYT)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 대선에서 패배한 지난달 11월 이후 텔레그램과 극우 온라인 게시판 포챈(4chan), ‘더 도널드’ 등에서 ‘반(反) 아시아’ 그룹들과 관련 대화들이 급증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촉발시킨 아시아계 혐오가 이번 총격 사건의 원인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이번 애틀랜타 총격 사건 직후 아시아계를 비방하는 한 텔레그램 채널에서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응답자의 84%가 투표한 가장 많은 대답이 “코로나19에 대한 정당한 보복”이었다고 NYT는 전했다.
현지 경찰이 용의자인 백인 남성 로버트 애런 롱(21)의 범행 동기와 관련해 ‘성 중독(sexual addiction)’ 가능성을 제기한 데 대한 분노도 이어졌다. 사건의 본질을 감추기 위한 미국 경찰의 시도가 아시아계 여성들을 ‘성적 대상(sex objects)’으로 격하시킨다는 비난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총격 사건이 발생한 애틀랜타를 비롯해 뉴욕·시카고·피츠버그·샌프란시스코 등 미국 전역에서 20일(현지시간) 이번 총격 사건을 항의하는 집회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아시아계를 향한 증오범죄를 멈출 것을 촉구했다.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열린 집회에는 한국계 여배우 샌드라 오가 깜짝 등장해 “아시아계에 대한 증오를 멈추라”고 촉구했다고 CBS방송이 보도했다. 샌드라 오는 “나는 여기에서 여러분들과 함께 할 수 있어 정말 기쁘고 자랑스럽다”면서 “나는 아시아계라는 자랑스럽다”고 외쳤다.
특히 미국에 거주하는 아시아계 여성들은 인종차별에다 성적 대상으로 격하되는 위험 속에 노출돼 있다. AP통신은 “아시아계 여성들은 이번 총격 사건이 수그러들지 않는 인종차별적 의미라고 말한다”고 지적했다.
프리랜서 작가이자 음악인인 리와그 딕슨은 “내가 성매매 종사자이거나, 필리핀계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난할 것이라고 가정하고 내가 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다”고 말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딕슨은 “나이가 많았던 상사는 성 관계에 돈을 주겠다고 제안한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정의 신장을 위한 단체의 그레이스 파이는 이번 총격 사건을 “아시아계 여성들에 대한 진정한 모욕”이라고 강조했다.
AP통신은 아시아 여성들을 성적 대상으로 삼았던 인식은 수 세기에 걸쳐 있었다고 지적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의 한국계 일라인 김 명예교수는 “미군이 아시아 지역에 주둔하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면서 “아시아 주둔 미군은 오랫동안 불법적인 성매매 논란을 야기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 태국과 다른 아시아 국가 여성들이 미군의 여러 ‘휴양·휴가지들(rest and recreation spots)’에서 성적인 일에 종사했다. 이는 아시아 여성들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심어줬을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미군들이 미국에 돌아가서 인종차별적 고정관념을 형성하게 만들었다고 김 명예교수는 AP통신에 설명했다.
NYT는 아시아계를 향한 증오 분위기가 코로나19가 중국에서 처음 등장한 지난해 봄에 증가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 “쿵푸 독감(Kung Flu)” 등으로 지칭한 이후 아시아계 혐오 해시태그가 급등했다고 NYT는 보도했다.
NYT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미국 대선에서 미국 대선에서 패배한 이후 아시아계 증오의 2차 확산이 이뤄졌다고 전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의 꼭두각시’라는 게시물이 떠돌면서 아시아계 증오 분위기에 불을 질렀다. NYT는 지난해 11월 이후 아시아계를 향한 폭력 선동이 일상화되고, 실제로 폭력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NYT는 미국 럿거스대의 조사 결과를 인용해 지난해 12월 텔레그램 등에서의 아시아계에 대한 모욕이 이전 11개월의 평균과 비교할 때 65% 급증했다고 전했다.
미디어 분석업체 지그널랩스는 지난해 3월 이후 아시아계를 반대하는 주장이 온라인에 무려 800만건 올라왔으며, 이들 중 대부분은 거짓이었다고 밝혔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