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의 직장인 이모(40)씨는 지난해 근처 펫숍에서 생후 8주 강아지를 분양받았습니다. 커다란 눈망울이 쏟아질 듯 귀여운 퍼그였죠. 펫숍 직원은 “전염병 검사를 마친 건강한 가정 분양견이다. 15일 안에 폐사하면 보상해드린다”라고 소개했죠. 퍼그를 품에 안고 기뻐하는 초등학생 아들을 보며 이씨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퍼그는 분양 1주 만에 고열과 설사에 시달렸습니다. 펫숍이 소개한 동물병원에 데려갔지만 수의사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그런 듯하다”며 정밀검사는 권하지 않았죠. 시간을 끌다 분양 1개월이 지났고 퍼그는 39도 고열에 발작 증상도 보였습니다. 뒤늦은 키트검사에서 치명적인 홍역 확진 판정을 받고 결국 사망합니다.
이씨는 업체로부터 “환불 기간인 15일을 넘겼다” “비슷한 일로 손해배상 소송에서 이긴 적도 있으니 마음대로 하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분양 계약서의 환불 규정은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유골함을 안고 눈물을 흘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건 없었죠.
15일 환불규정, 당신은 보장받을 수 없다
‘구입 후 15일 이내 발병 또는 폐사하면 동종 애완견으로 교환 또는 환불해드립니다’
‘단 소비자의 중대 과실이 원인이거나 사망 원인이 불분명한 경우에는 배상 불가입니다’
펫숍 분양계약서의 15일 환불 규정입니다. 귀여운 강아지를 어서 데려가고 싶은 마음에 대충 넘기기 쉽지만, 문장마다 독소 조항이 숨어 있습니다.
먼저 ‘구입 후 15일 이내 발병 또는 폐사’ 조건입니다. 15일 만에 강아지 건강 상태를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치명적인 3대 전염병인 코로나, 홍역, 파보의 잠복기는 최장 2주입니다. 초기 증상은 가벼운 콧물·미열에 그치며, 발병 1~3주 뒤에야 고열·혈변·경련 등 눈에 띄는 중증을 보이죠. 감염을 눈치챘을 때는 이미 약속한 15일이 지난 경우가 많습니다.
다음은 ‘동종의 애완견으로 교환 혹은 환불’ 조건입니다. 피해자들은 품에 안는 순간부터 강아지에게 강한 애착을 느낍니다. 고장 난 물건 내버리듯 강아지를 포기할 사람은 많지 않죠. 대다수 피해자는 펫숍 보상을 거부하고 치료하려 합니다. 하지만 중증 전염병의 치사율은 90%에 이르죠.
마지막으로 ‘사망원인이 불분명한 경우 배상 불가’ 조항입니다. 가장 까다로운 내용인데요. 사망 원인을 규명하려면 3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하지요. ①강아지가 분양 15일 안에 사망해야 하고 ②분양 이전에 전염병에 걸렸다고 입증하고 ③이를 공증할 수의사 소견서가 필요합니다. 당장 병의 잠복기, 검사비용 탓에 ①, ②를 입증하기 어려운데 제삼자인 수의사에게 펫숍 과실이 크다는 증언을 부탁해야 합니다.
15일 환불 규정은 미끼…해법은 건강한 입양
이씨 외에도 분양받은 강아지가 3~4주 만에 질병에 확진됐다는 제보자가 많습니다. 펫숍이 약속한 15일이 지나서 중증을 보였으니 배상을 요구할 수 없지요. 15일 환불 조항은 소비자-판매자의 정보 비대칭을 악용한 미끼에 가깝습니다.
결국 해법은 건강한 개를 고르는 것뿐입니다. 동물 보호소에서 정성껏 관리된 유기견이 출처도 알 수 없는 어린 펫숍 강아지보다는 건강할 확률이 높지요. 사지 말고 입양하자는 말을 되새겨야 합니다.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