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당국이 북한 공민을 ‘불법 자금세탁’ 관여 혐의로 미국에 넘겼다며 외교관계 단절을 선언했다. 미국에도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고 주말레이시아 북한 대사관은 자국의 단교 선언에 따라 대사관 문을 닫겠다고 발표했다. 말레이시아 정부도 성명을 통해 유감을 표명하며 쿠알라룸푸 주재 북한 외교관에게 48시간 이내 떠나라고 명령했다.
북한 외무성은 19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낸 성명에서 “17일 말레이시아 당국은 무고한 우리 공민을 ‘범죄자’로 매도하여 끝끝내 미국에 강압적으로 인도하는 용납 못 할 범죄행위를 저질렀다”며 “특대형 적대행위를 감행한 말레이시아와의 외교관계를 단절한다는 것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말레이시아가 미국에 인도한 인물은 문철명(56)이다. 미국 연방수사국은 문씨가 대북제재를 위반해 술과 시계 등 사치품을 북한에 보냈고, 유령회사를 통해 돈세탁을 했다며 말레이시아에 신병 인도를 요청했다. 문씨는 혐의를 부인했지만 말레이시아 법원은 2019년 12월 문씨의 인도를 승인했고, 말레이시아 대법원은 이달 초 문씨의 상고를 기각해 이를 확정했다.
외무성은 “문제의 우리 공민으로 말하면 다년간 싱가포르에서 합법적인 대외무역 활동에 종사해온 일꾼으로서 그 무슨 ‘불법자금세척’에 관여하였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날조이고 완전한 모략”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은 우리 공화국을 고립 압살하려는 미국의 극악무도한 적대시 책동과 말레이시아 당국의 친미 굴욕이 빚어낸 반공화국 음모 결탁의 직접적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또 “지금 이 시각부터 쌍방 사이에 초래될 모든 후과에 대한 책임은 말레이시아 당국이 전적으로 지게 될 것”이라며 “이번 사건의 배후조종자·주범인 미국도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유성 주말레이시아 북한 대사 대리는 이날 “우리는 문을 닫을 것”이라며 “직원들과 계획을 논의하고 있으며, 본국과 연락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뉴스트레이츠타임스가 보도했다. 김 대사 대리는 평양의 추가 지시를 기다린다면서 더 이상의 언급을 피했다. 다만, 북한 대사관의 공식 성명이 발표될 것인지 묻자 “고려 중”이라고 답했다.
말레이시아 정부도 같은날 오후 성명을 통해 “북한의 (단교) 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이번 결정은 비우호적이고, 건설적이지 못하며 상호존중 정신과 국제사회 구성원 간의 우호 관계를 무시했다”고 비난했다.
“말레이시아는 1973년 수교 후 줄곧 북한을 긴밀한 파트너로 생각했고, 어려운 시기에도 계속 지지했다”고 한 말레이시아 정부는 “2017년 개탄스러운(deplorable) 김정남 암살사건 이후에도 우리는 북한과 관계 강화를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말레이시아 정부는 “북한의 일방적 결정은 부당하고, 불균형적이며 지역의 평화, 안정, 번영을 촉진하는 데 있어 확실히 지장을 준다”고 재차 비난했다.
이날 두 나라는 상대국 대사를 맞추방했고, 주평양 말레이시아 대사관은 폐쇄된 상태다. 쿠말라룸푸르의 북한 대사관에는 대사 없이 외교관 2∼3명과 이들의 가족, 행정직원 등 10여명이 현재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단교 결정에 따라 이들은 일시 폐쇄가 아니라 아예 철수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외교 전문가는 “북한 직원들이 일시적으로 본국으로 돌아가는 ‘폐쇄’가 아니라 ‘철수’를 하려면 부동산, 집기류 등 정리 때문에 준비 기간이 걸릴 수 있다”고 추정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