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와 중국의 첫 고위급 회담이 18일(현지시간) 미 알래스카에서 막을 올렸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양국 외교 실세들의 첫 대면 만남이 이뤄진 것이지만 양측은 상견례 자리부터 가시 돋친 말을 주고받았다. 날선 신경전 속에 통상 덕담을 주고받는 2분짜리 모두발언 시간은 1시간이 넘는 비방전으로 돌변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열린 이날 회담에는 미국 측에서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중국 측에서는 양제츠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참석했다. 양측은 18~19일 이틀 동안 총 3차례의 회담을 진행할 예정이다.
미·중 양국은 첫 만남부터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통상 언론에 공개되는 모두발언은 양측이 짧게 회담 요지를 설명하거나 덕담을 주고받는 게 외교상 관례지만 양측은 약속된 2분씩의 모두발언 시간을 어기고 서로를 향한 비난에 몰두했다.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에 양측의 날선 공방이 1시간 넘게 고스란히 언론에 중계됐다고 BBC방송은 전했다.
먼저 모두발언을 시작한 블링컨 장관은 “신장, 홍콩, 대만 등에서 벌어지는 중국의 활동들은 물론이고 미국에 대한 사이버 공격, 미국의 동맹국들에 대한 경제적 강압이 글로벌 안전성을 유지하게끔 하는 규칙 기반의 세계 질서를 위협하고 있다”며 포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이 점이 (중국의 문제들이) 단순한 내부 문제가 아니며, 우리가 오늘 문제를 제기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느끼게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신장, 홍콩, 대만은 중국이 자국 내부의 문제라며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주제다.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에 토대를 둔 미국 측 비판에 중국은 미국의 흑인 인권 문제를 거론하며 역공을 펼쳤다.
양 정치국원은 “미국은 자신들의 문제를, 중국은 중국의 문제를 다뤄야 한다”며 “미국의 인권이야말로 흑인 시민들이 ‘살육당하는(slaughtered)’ 등 최저점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미 경찰관의 흑인 살해로 촉발돼 미국 사회를 휩쓸었던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M)’ 시위 상황을 꼬집은 것이다. 그는 “미국은 내부 불만도 해소하지 못하면서 미국식 민주주의를 다른 나라에서 증진시키려 한다”며 “미국이 중국 공격을 위해 다른 나라를 선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양 정치국원이 블링컨 장관의 모두발언에 대응해 15분이나 ‘반격 연설’을 쏟아내자 미국이 또다시 반격에 나섰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블링컨 장관은 모두발언 시간이 끝난 줄 알고 나가려는 취재진을 제자리로 돌려세운 뒤 “지금까지 100여개국과 통화를 했는데 모두 미국이 동맹들에게 돌아온 것을 깊이 만족해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리고 나는 당신들 정부가 하는 활동들에 대한 깊은 우려도 함께 듣고 있다”고 덧붙였다.
회담 종료 후에도 미국과 중국은 각각 ‘기선제압식 연출’ ‘외교적 결례’를 운운하며 서로를 맹비난했다. 18일 비공개 만찬 회담, 19일 오전 마지막 담판이 남았지만 양측이 실질적 의견 교환보다는 서로 불만만 표출하다 끝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미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는 “바이든 행정부는 이번 회담에서 신속한 관계 개선이 이뤄질 가능성을 낮다고 보고 회담 직전 날인 17일 홍콩과 중국 본토 관리 24명에 대한 추가 제재를 감행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이번 제재는 저녁상에 손님을 초대하고서 식탁에 침을 뱉는 격”이라고 격한 반응을 보였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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