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토트넘 홋스퍼가 부상에서 회복 중인 손흥민(29)을 활용하지 못하고 2020-2021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 16강에서 탈락했다. 한국 K리그에서 ‘오르샤’라는 등록명으로 활약했던 크로아티아 디나모 자그레브 공격수 미슬라프 오르시치에게 해트트릭을 허용했다.
토트넘은 19일(한국시간)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막시미르 스타디움으로 찾아간 유로파리그 16강 2차전 원정경기에서 자그레브에 0대 3으로 완패했다. 지난 12일 1차전 홈경기에서 해리 케인의 멀티골로 2대 0 승리를 거뒀던 토트넘은 최종 전적에서 1승 1패로 맞섰지만 최종 스코어에서 2대 3으로 밀려 8강 진출에 실패했다.
자그레브는 이 경기를 사흘 앞두고 조란 마미치 감독이 횡령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사임해 어수선한 상황에도 오르시치의 화력을 앞세워 토트넘을 무너뜨렸다. 오르시치는 크로아티아·이탈리아·슬로베니아 리그를 전전하며 이름을 알리지 못하던 2015년 K리그 전남 드래곤스에 입단해 존재감을 끌어올린 공격수다.
중국 창춘 야타이로 잠시 떠난 2016년 하반기를 제외하고 2018년 7월까지 전남과 울산 현대에서 각각 한 시즌 반씩 뛰면서 K리그 101경기에 출전해 28골 15어시스트를 기록했다. K리그 명가 울산이 유독 우승하지 못했던 대한축구협회(FA)컵을 2017년에 처음으로 정복했을 때 오르시치는 공격진의 일원으로 힘을 보탰다.
이날 무득점으로 끝난 전반전만 해도 토트넘의 8강 진출이 유력하게 예상됐지만, 오르시치는 후반부터 공격력을 끌어올려 기적의 역전 드라마를 썼다. 후반 17분 로브로 마예르의 패스를 받아 페널티박스 왼쪽 구석에서 오른발 감아차기로 선제골을 터뜨렸고, 후반 38분 오른발 슛으로 추가골을 넣어 8강행의 향방을 안개 속으로 몰아넣었다.
승부는 연장전에서 갈렸다. 승부를 가른 주인공도 오르시치였다. 오르시치는 연장 후반 1분 하프라인 인근에서 드리블 돌파로 토트넘 수비벽을 파괴한 뒤 페널티박스 아크 왼쪽에서 오른발 슛으로 토트넘의 골망을 흔들었다. 토트넘에 넘어갈 뻔했던 8강 진출권을 자그레브로 가져온 해트트릭.
토트넘은 손흥민의 부재 속에서 만회골을 넣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졌다. 손흥민은 지난 15일 아스널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원정경기 중 왼쪽 햄스트링을 다쳐 전력에서 이탈했다. 케인, 루카 모우라, 델리 알리, 에릭 라멜라를 앞세웠지만 공격력은 살아나지 않았다.
토트넘의 조제 무리뉴 감독은 경기를 마친 뒤 방송사와 인터뷰에서 “자그레브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땀과 힘, 피를 남겼다. 그들은 행복의 눈물을 남겼다. 반대로 우리는 중요한 경기에 임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며 “지금 내 기분은 슬프다는 말로 부족하다”고 말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