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염한 재즈·치명적 안무… 뮤지컬 ‘시카고’ 연습 현장

입력 2021-03-18 16:36
뮤지컬 ‘시카고’에서 벨마 켈리 역을 맡은 배우 윤공주(앞 줄 가운데)가 이 공연의 상징인 ‘올 댓 재즈’(all that jazz)를 시연하고 있다. 신시컴퍼니 제공

18일 오전 개막 준비로 분주한 뮤지컬 ‘시카고’ 연습실. “난 누구의 여자도 아냐. 내 인생을 사랑해. And all that jazz!” 이 공연의 상징과 같은 넘버(음악) ‘올 댓 재즈’(all that jazz)가 흘러나왔다. 벨마 켈리가 앙상블과 함께하는 시카고의 첫 곡으로, 이날은 배우 윤공주가 호흡을 맞추는 날이었다. “제가 드디어 이걸 해보네요.” 2012년 록시 하트로 시카고 무대에 섰던 그는 올해 벨마가 됐다. 2000년 초연부터 함께 한 ‘시카고 장인’ 최정원의 길을 윤공주가 그대로 걷고 있다. 올 블랙 의상을 입고 하이힐을 신은 윤공주의 농염함에선 이전의 록시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이날 그는 9년 전 록시를 연기했을 때 입었던 재킷을 걸치고 나왔다.

이날 뮤지컬 ‘시카고’ 연습 과정은 코로나19 영향으로 앞선 시즌과 달리 온라인으로 공개됐다. 언론과 공연 관계자만 참석 가능했지만 260명이 넘는 인원이 몰려 21주년을 맞은 시카고의 인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뮤지컬 '시카고' 연습실에 모인 배우들. 신시컴퍼니 제공

1996년 만들어진 시카고는 국내에선 2000년 12월 8일 라이선스 초연했다. 공연은 1920년대 어수선했던 미국에서 시작한다. 쿡 카운티에서 실제로 벌어진 공판에서 영감을 받아쓴 동명의 희곡을 바탕으로 밥 포시가 뮤지컬로 만들었다. 쿡 카운티 교도소에 수감된 여죄수 벨마(최정원·윤공주)와 록시(아이비·민경아·티파니영), 변호사 빌리 플린(박건형·최재림)이 주인공이다. 욕망이 얽힌 사회를 날카롭게 풍자하는 보드빌 형식의 작품이다. 일반적인 기승전결 구조가 아닌 등장인물의 관계와 설정, 우화나 상징 같은 표현 방식을 부각하는 콘셉트 뮤지컬이다. 벨마는 관객의 몰입을 제한하고 질문을 던지는 사회자 역할을 한다.

뮤지컬 ‘시카고’에서 록시 하트 역을 맡은 배우 민경아가 록시의 대표곡 ‘록시’를 시연하고 있다. 신시컴퍼니 제공

이날 배우들은 올 댓 재즈에 이어 록시의 대표 넘버 ‘록시’(Roxie), 벨마와 록시의 호흡이 일품인 ‘핫 허니 래그’(Hot Honey Rag) 등을 선보였다. 민경아는 “이렇게 어려운 춤은 처음이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처음 록시에 캐스팅된 그는 “코어 근육을 이용해 골반을 최소한으로 움직여야 했다”며 고강도 안무의 어려움을 짚었다. 온라인으로 중계된 시카고의 안무는 시원시원하고 박력 넘치는 동작은 거의 없었다. 살짝살짝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근육 하나하나를 분절해 그 움직임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였다.

‘핫 허니 래그’(Hot Honey Rag)를 선보이고 있는 최정원과 아이비. 신시컴퍼니 제공

다른 공연과 달리 시카고가 개막 전 연습실을 공개할 수 있는 이유는 세트 도움 없이 음악과 안무, 연기와 노래로만 무대를 채울 수 있어서다. 군더더기 없는 직관적인 실제 시카고의 무대처럼, 연습실에도 딱 한 개의 세트만 놓여있었다. 거의 모든 장면이 이뤄지는 커다란 정중앙 계단형 피트다. 흐느끼듯 절규하는 재즈 선율과 배우들의 거칠지만 유쾌한 에너지만으로도 공간을 채우기엔 충분했다.

배우들에게 시카고는 특별한 작품이다. ‘대한민국 시카고의 산증인’ 최정원의 감회는 남달랐다. “죽기 전 딱 한 공연만 하라고 하면, 전 시카고를 할 것 같아요. 아직도 초연이 생생해요. 절 살아서 움직이게 하는 작품이죠.” 아이비도 2012년 시카고로 뮤지컬에 입문했다. 그는 “가수에서 뮤지컬 배우로 인생을 바꿔놓은 작품”이라며 “시카고를 통해 삶을 배웠다”고 말했다. 4월 2일부터 디큐브아트센터.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