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지키려 한) 그분에게 감사하고, 그래도 지키지 못해 미안하고….”
22년 차 베테랑 형사가 전한 한 아동학대 사망 사건의 전말이 네티즌을 울리고 있다. 광주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책임수사관 정희석 경감이 17일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회고한 이야기다. 그가 “잊지 못할 사건”이라며 털어놓은 5살 아이의 비극과 그 아이를 돌본 이웃의 노력에 네티즌은 “감사하고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 경감은 이날 방송에서 “형사가 된 지 2년쯤 됐을 때 겪은 사건”이라며 5살 남아가 사망한 사건을 수사한 적 있다고 했다. 그는 “친모의 신고를 받고 현장에 가보니 젊은 엄마가 단칸방에서 5살 아들과 3살 딸을 혼자 키우고 있었다”며 “엄마 말로는 퇴근하고 왔더니 아들이 침대에서 놀다 모서리에 부딪혀 갈비뼈 부근이 아프다고 했고, 시간이 늦었으니 다음 날 병원에 가기로 하고 일어났는데 사망해 있었다더라”고 말했다.
정 경감은 “이런 사건 수사가 어렵다”면서 “아이는 이미 사망했고 집 내부에서 있었던 일이기 때문에 증거를 찾기 어렵다”고 했다. 답답함을 느끼던 그는 형사과 사무실에서 놀고 있던 숨진 남아의 동생인 3살 여아를 데리고 근처 편의점에 갔다고 한다. 과자를 사주고 돌아오던 길에 정 경감의 품에 안겨 있던 아이가 갑자기 “아빠가 때렸어요”라고 귓속말을 했다. 분명 “아빠가 없다”고 했던 엄마의 진술과 배치되는 말이었다.
정 경감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동네 주민들에게 물어보니 최근 엄마가 동거를 시작한 남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그래서 재조사를 하게 됐고, 평소 맞는 것을 본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 돌아다니면서 탐문 수사를 했다”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숨진 아이와 관련해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세 차례나 학대 의심 신고가 접수됐던 것을 알게 됐다. 신고자는 같은 동네에 거주하던 아주머니였다. 아주머니는 동네에서 마주칠 때마다 멍이 들어 있는 아이의 모습을 수상히 여겼다고 한다. 그때마다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 아이의 모습을 증거 사진으로 남겼다. 정 경감은 “옷을 벗겨서 상체까지 전부 찍어 뒀더라”라며 “동영상으로 ‘어떻게 다친 거야?’라고 물어보고 아이가 ‘그 아저씨가 때렸어요’라고 답하는 음성까지 담아 두셨다”고 말했다. 그 덕분에 경찰은 엄마의 동거남을 체포해 구속했다.
정 경감은 “마치 그 억울하게 죽은 아이가 동생을 통해 제게 뭔가 이야기를 한 것같은 느낌이었다”고 했다. 또 “그냥 묻힐 뻔한 사건을 평소 이웃 중 누군가가 다 기록에 남겨뒀다는 게 너무 감사했고, 그분도 힘닿는 데까지 아이를 지키려 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먹먹했다”며 “그런데도 우리가 지키지 못했다는 게 미안했다”고 말했다.
방송을 본 네티즌은 “아주머니가 정말 감사한 분이다. 하실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하신 것” “이웃 주민분이 큰일 하셨다” “신고를 세 번이나 해도 달라지는 게 없으니 증거를 남기는 방법으로 아이를 도울 수밖에 없었을 것” “애가 결국 세상을 떠나서 마음 많이 아프셨을 것 같다” 등의 댓글을 남겼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