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구하라 협박’ 최종범 댓글 소송에…法 “범죄 비판 용인”

입력 2021-03-18 10:20 수정 2021-03-18 12:03
전 여자친구인 그룹 '카라' 출신 구하라에게 협박·상해·강요 등을 한 혐의로 2018년 10월 24일 영장실질검사 마친 후 법원을 빠져나가는 최종범씨. 뉴시스

가수 고(故) 구하라씨의 사생활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혐의로 징역 1년을 확정받은 최종범씨가 댓글 작성자들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에서 법원은 최씨 청구의 일부만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기각했다. 판결에는 댓글에 과도하게 법적 책임을 지우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고 범죄에 대한 비판은 어느 정도 용인돼야 한다는 취지가 담겼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3단독 신종열 판사는 지난 16일 최씨가 댓글 작성자 6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5명에 대한 청구를 기각하고, 1명만 최씨에게 3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최씨는 자신과 관련된 언론 기사의 포털사이트 댓글 때문에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면서 댓글 작성자들이 300만~4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소송을 냈다.

이번 판결에서 청구 기각된 5명이 작성한 댓글은 “파렴치한 놈 맞으면서 뭘 자꾸 아니래. 이런 놈들한테는 3년도 짧다” “저런 XX들 솔까 무기징역 내려야 됨; 지금 데이트폭력으로 3일에 1명씩 죽는데 남자XX들 처벌 똑바로 하는 게 유일하게 데이트 폭력 막는 방법임” “넌 쓰레기야” 등이다.

신 판사는 범죄를 다룬 언론 기사의 포털사이트 댓글란에 독자가 의견을 표명한 행위가 형법상 모욕죄나 민사상 불법행위에 해당하는지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신 판사는 “언론보도 관련 게시판에서의 표현 행위에 대한 과도한 법적 개입은 사회 구성원의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게시판의 긍정적 역할과 기능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범죄나 사회적 일탈 행위에는 법적 책임 이외에 여론 등을 통한 사회적 비판이나 비난 형태의 책임 추궁이 수반될 수 있다”며 “그러한 비판이나 비난은 일정한 한계를 넘어서지 않는 한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로써 용인돼야 한다”고 했다.

신 판사는 또 이른바 바른말, 고운말만으로 사람의 의견이나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온라인 공간에서의 표현은 강제적 규율이 아니라 가급적 이용자의 자율적 규제에 맡겨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따라서 단순히 무례한 언사나 욕설이 댓글에 포함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불법행위라고 쉽게 인정해서는 안 되고 표현의 경위나 내용·형식, 댓글 작성자와 상대와의 관계, 언론보도와 표현의 관련성 정도를 종합적으로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이 같은 기준에 따라 신 판사는 5명의 댓글은 불법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피해자인 구씨가 유명 연예인이고, 최씨 범행이 디지털 성폭력의 일환으로 큰 사회적 관심을 끌었던 사안이라는 점을 감안했다. 이에 댓글 내용이 처벌 수위나 범죄 예방방안에 관한 것이라는 점도 고려했다.

다만 “XX XX야. 죄는 죄고. 일단 살 좀 빼라. 어휴 XXXXX XX”라는 댓글에 관해서는 언론 기사 내용과 상관없이 최씨의 외모를 비하하거나 조롱하는 표현이라는 점에서 최씨에게 정신적 고통을 준 위법한 행위라고 신 판사는 평가했다.

그동안 성폭력 가해자가 피해자와 피해자를 지지하는 연대자 또는 제3자를 상대로 명예훼손·모욕이라며 민형사상 법적 조치를 하는 것은 2차 가해일뿐 아니라 피해를 드러내지 못하도록 하는 압박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로 지적됐다.

김승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