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공시지가 기준 ‘표준 단독주택’에 폐가·빈집이

입력 2021-03-17 18:42 수정 2021-03-18 14:45
제주도가 지난해 8~11월 진행한 자체 조사에서 폐가와 공가가 제주지역 주택 개별 공시지가의 산정 기준이 되는 '표준 단독주택'에 다수 포함된 사실이 확인됐다. 제주도 제공

제주도가 단독주택 공시가격을 결정할 때 기준으로 삼아온 ‘표준 단독주택’ 4451채 가운데 47채가 폐가 등 집값의 표준으로 삼을 수 없는 집인 것으로 조사됐다.

표준 단독주택의 공시가는 인근 단독주택 공시가 책정의 기준이 돼 각종 세금과 기초연금, 건강보험료 등을 부과하는 잣대가 되기 때문에 잘못된 표준 단독주택 선정으로 인한 공시가 오류는 시민이나 지자체의 금전적 손실로 이어진다.

16일 원희룡 제주지사는 “지난 15일 국토교통부가 전국 19.08%라는 사상 최대 공시가격 상승안을 발표했다”며 “그러나 발표된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산정 근거없이 상승된 가격만 제시해 믿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난해 제주도가 진행한 자체 조사에서 공시가격에 오류가 많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전국 모든 지자체에 공시가격 검증센터를 설치해 공동주택 공시가격과 표준주택 공시가격을 전면 재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주도는 지난해 5월 감사원이 발표한 ‘부동산 가격공시제도 운용실태 감사결과’에 따라 지난해 8월부터 11월까지 제주도 전체(4451개) 표준주택 중 토지·주택간 공시가격 역전현상이 나타난 439개 표준주택에 대해 공시가격 검증 절차를 진행했다.

그 결과 439개 표준주택 공시가격에서 47개의 오류를 발견했다. 주변 단독주택 공시가 책정의 기준이 되는 표준 주택 47곳이 폐가, 빈집, 무허가 건물 등 집값의 표준으로 삼을 수 없는 집인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폐가나 빈집이 18채, 무허가 건물이 포함된 주택 16채, 상가 등 주택 이외 용도로 리모델링된 건물 9채, 면접 계산에서 오류가 생긴 건물 4채 등이었다.

문제가 드러난 47채는 제주도 전체 표준주택 4451채의 1% 수준이지만 이러한 표준주택 공시가격 오류로 공시가격이 왜곡된 개별주택은 최소 1134채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1134명의 납세자가 재산세를 덜 냈거나 더 냈음을 의미한다. 특히 문제가 드러난 비율은 현장조사 표본의 11%로, 조사 확대시 더 많은 오류가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고 제주도는 밝혔다.

실제 1976년 지어진 제주의 한 단독주택은 수년째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로 주택으로서의 기능이 상실됐음에도 올해 표준 단독주택으로 선정돼 이 주택의 공시가를 기준으로 인근 단독주택 53채의 공시가가 산정됐다.

국토부의 ‘표준주택 선정 및 관리 지침’은 무허가 건물이나 개·보수, 파손이 심한 단독주택은 표준주택 선정시 필수적으로 제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표준 단독주택 선정에 문제가 발생해 공시가에 오류가 빚어지는 것은 현장 조사가 부실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부동산원 제주지사 직원 소수가 제주 표준 단독주택 4451채의 가격 산정 업무를 맡으면서 일일이 현장 조사를 다니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잘못 선정된 표준 단독주택을 바탕으로 감정평가사들이 공시가를 산정하고, 이후 지방자치단체가 부동산원이 정한 비준표에 따라 표준주택의 가격을 가감하는 방식으로 인근 다른 단독주택의 가격을 산정하면서 표준주택 공시가의 오류는 확대 재생산된다.

앞으로 제주도는 지난해 6월 전국 최초로 설치한 공시가격 검증센터를 통해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읍면지역과 동지역을 대상으로 주택 공시가격 전수조사에 착수한다는 계획이다.

원희룡 지사는 “표준주택 공시가격 오류로 도민과 국민들의 피해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공시가격 현실화보다 정상화가 먼저”라며 “잘못된 공시가격으로 인한 국민의 피해를 막기 위해 서울 서초구와 합동조사를 하기로 합의했고 보궐선거 이후 전국적으로 합동조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 원 지사는 “국토부와 한국부동산원의 위법한 부동산 공시 행정은 재산권 등 국민의 여러 권리를 박탈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개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도 촉구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