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지풍파 일으키지 마라”…불필요한 북한 자극 자제
미 차관보, 북한 “범죄집단” 발언에 안보당국자들 ‘격분’
미국, 북한 접촉 목표는 대북정책 완성까지 도발 억제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는 새로운 대북정책을 완성하기 전까지, 북한을 향해 공개적인 메시지를 내보낼 경우 ‘더 부드러운 어조(softer public tone)’를 사용하기로 지난달 초 결정했다고 미국 NBC방송이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북한을 자극하는 것이 미국의 목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담화에서 미국을 겨냥해 “시작부터 잠 설칠 일거리를 만들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경고 메시지를 날린 데 대해 바이든 행정부가 직접적인 대응을 삼가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분석된다.
이번 담화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북한이 공개적으로 미국에 날린 도발적인 언사였다.
이에 대해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우리는 북한에서 나온 발언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이나 답변할 것이 없다”고 밝혔다. 일본을 방문했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그 발언을 잘 알고 있다”고만 짧게 말한 뒤 대답을 피했다.
젤리나 포터 국무부 부대변인도 전화 브리핑에서 김 부부장과 담화와 관련한 질문에 대해 “우리는 더 이상 알려줄 것이 없다”고 말문을 닫았다. 이어 “우리는 여러 (미국) 정부 부처들이 참여해 대북정책에 대한 철저한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는 말을 반복하겠다”고 답했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더 부드러운 어조’를 사용한다는 방침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가 주재하는, 고위 당국자들의 모임인 이른바 ‘교장 위원회’에서 합의됐다고 NBC방송은 전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 최고위 당국자들이 결정한 내용이라는 것이다.
이 접근법은 “평지풍파를 일으키지 마라(don't rock the boat)”는 말로 요약된다고 NBC방송은 설명했다. 북한이 바이든 새 정부에 대해 도발행위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 북한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한 당국자는 “우리가 이 문제(북한)를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에 대해 더 잘 알기 전까지, 우리는 풍파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 법무부가 13억 달러(약 1조 5000억원) 규모의 현금과 가상화폐를 훔쳤거나 절도를 시도했던 북한 해커 3명을 지난 2월 17일 기소했을 때다.
미 법무부의 존 데머스 국가안보담당 차관보는 기소 사실을 발표하면서 북한을 “범죄 집단(criminal syndicate)”이라고 불렀다. 또 북한 해커들을 “세계 최고의 은행 강도들”이라고 비난했다.
데머스 차관보의 발언에 바이든 행정부의 일부 고위 국가안보 참모들이 격분했다고 NBC방송은 보도했다. 한 고위 당국자는 “NSC 참모들이 (데니스 차관보의) 단어 선택을 좋아하지 않았다”면서 “그것은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고 법무부에 우려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특히 데니스 차관보의 발언은 백악관과 조율되지 않았던 것이라고 바이든 행정부 당국자들은 NBC에 밝혔다. 이 발언은 바이든 행정부의 국가안보 참모들이 북한에 대해 ‘부드러운 어조’를 사용하자고 결정한 며칠 뒤에 나왔다고 NBC는 전했다.
NBC는 “이 에피소드는 바이든 대통령이 지금까지 공개적으로 싸울 필요가 없었던 위기(북한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데에 대한 백악관의 우려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바이든 행정부 내에서 북핵 위협과 관련해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 최선일지, 무시하는 것이 최선일지에 대한 긴장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검토와 관련해 미 국무부의 성 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 대행은 “나는 아마도 몇 주일 안에 검토를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 행정부 당국자들은 대북정책 검토가 4월 또는 5월 초까지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되지 않는다고 밝혔다고 NBC는 전했다.
NBC는 대북정책 검토에 북한과 관여했던 트럼프 행정부 당국자들도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북·미 정상 간의 직접 접촉에 의존했던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얼마나 수용할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는 대목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당국자들은 북한의 크고, 자발적인 양보가 없는 상황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지금 당장 대북정책에 엄청난 힘을 쏟아붓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비공개적으로 분명히 밝혔다고 NBC는 전했다.
현재 시점에서 바이든 정부가 북한과 접촉했던 목표는 대북정책 검토가 완료되기 전까지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중국에게 미국이 이런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한 전직 당국자들을 인용해 NBC는 보도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