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왜 나만 자꾸 일본 선수들이랑 붙지?’ 했는데, 나중엔 ‘나를 강하게 키우려나 보다’ 했어요. 자꾸 이기니까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아요.”
2020 도쿄올림픽 메달에 도전하는 한국 탁구 대표팀은 최근 실력이 성장한 데다 홈 그라운드 이점까지 안고 있는 개최국 일본에 영원한 ‘최강국’ 중국 선수들까지 넘어야 한다. 그런 대표팀의 비기(祕器)는 다름 아닌 막내 신유빈(17·대한항공)이다.
신유빈은 최근 카타르 도하에서 끝난 월드테이블테니스(WTT) 스타 컨텐더 대회에서 전지희(15위·포스코에너지)와 함께 여자 복식 우승을 일궈냈다. 여자복식 세계랭킹 2위인 일본의 이시카와 가스미(단식 9위)-히라노 미유(단식 11위) 조를 결승에서 누르고서다.
지난 14일 귀국해 구단 숙소에서 자가격리 중인 신유빈은 16일 국민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복식 연습을 짧게 하고 들어갔는데 경기를 하다 보니 (호흡이) 맞춰지는 것 같닸다”며 “연습량이 많지 않았지만 언니가 편하게 대해줘서 불편하지 않았다. 언니와 함께 간절히 준비하다보면 더 친해지고 호흡도 더 잘 맞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단식에서도 일본 선수들을 상대로 한 랭킹 94위 신유빈의 강세는 두드러졌다. 64강에선 직전 대회에서 0대 3으로 완패하는 등 통산 2패를 기록 중이던 동갑내기 키하라 미유(47위·일본)를 3대 1로 잡아냈다. 16강에선 일본의 ‘에이스급’ 선수 히라노 미유까지 역시 3대 1로 눌렀다. 8강에서 전지희를 만나 아쉽게 탈락하긴 했지만, 한 층 성장한 공격력을 유감없이 확인할 수 있었던 경기 내용이었다.
신유빈과 동행한 김경아 대한항공 코치는 “유빈이가 이번 대회를 치르면서 심리적으로 불안할 때 공격적인 플레이로 역전하면서 자신감을 찾는 등 ‘위기관리능력’이 좋아졌다. 왜 공격적인 플레이를 해야 하는지 본인도 느꼈을 것”이라며 “키하라 미유나 오도 사츠키(103위·일본) 등 일본의 또래 차세대 선수들을 다 이겨본 것도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신유빈도 “올해 첫 대회에선 긴장돼서 소극적인 플레이가 나와 제 탁구가 마음에 안 들었다”며 “두 번째 대회엔 ‘지더라도 후회 없이 할 수 있는 걸 다 하자’는 생각으로 자신 있게 임했다”고 설명했다.
신유빈은 이번 대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 키하라 미유전을 꼽았다. 그는 “키하라는 동갑 선수라 시합 전에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DM)로 ‘내일 유니폼 어떤 색깔 입을 거냐, 좋은 경기 하자’라고 연락을 주고받기도 한다. 첫 대회 때 3대 0으로 졌는데 두 번째 대회에서 다시 붙게 된 뒤 또 먼저 연락이 와서 ‘얘가 날 놀리는 건가’ 싶었다”며 “첫 대회 땐 걔도 긴장한 게 느껴지는데 제가 끝내주게 못해서 ‘이렇게 탁구를 치면 안 된다, 지더라도 후회하지 않게 내 걸 하자’고 생각했는데, 이겨서 너무 좋았다”고 떠올렸다.
이어 “대표팀 언니 오빠들에게 키하라와 DM을 주고받은 걸 이야기하면 ‘시합 전에 상대 선수와 이야기를 나누냐, 확실히 요즘 애들은 다르다’고 말하기도 한다”며 웃었다.
신유빈이 보인 가파른 성장세에 탁구계 관계자들도 반색하고 있다. 유승민 대한탁구협회 회장은 15일 서울 용산 드래곤시티 호텔에서 열린 미디어 간담회에서 신유빈을 콕 집어 언급했다. 유 회장은 “여자 단식은 일본과 실력 차이가 났는데 이번에 신유빈이 단식에서 히라노 미유를 이겼고, 복식에서도 일본조를 이겼다”며 “전지희는 본인 실력을 탄탄히 구축하고 있다. 신유빈과 최효주(23·삼성생명)는 데이터 노출이 많이 안 돼 있고 ‘한 방’이 있으며 성장 속도도 빠르다. 여자 단체전에서 일본과 붙으면 지금 멤버로 (승리가) 가능하단 자신감이 생겼다”고 평가했다.
이번 도쿄올림픽은 이전 대회들과 달리 단체전에서 복식 경기가 먼저 펼쳐진 뒤 4차례 단식 경기가 이어진다. 복식에서 기선 제압이 필요한데, 전지희와 함께 복식에 나설 수 있는 신유빈의 성장은 한국 대표팀에 천군만마와 같다. 김택수 탁구협회 전무이사는 “일본엔 개인-단체 모두 랭킹에서 열세였는데 고무적인 건 신유빈과 전지희가 짧은 시간 호흡을 맞추고 중국을 위협하는 유일한 국가인 일본 조를 이기고 우승했다는 사실”이라고 기뻐했다.
신유빈은 이제 7월 열릴 도쿄올림픽을 향해 뛴다. 올림픽 전까지 예정돼있는 복식 국제대회는 없고, 단식의 경우에도 아직까지 국제대회 출전 계획은 없다. 하지만 지난 1년 간 그래왔던 것처럼 팀 내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해 한 단계 도약해야 한다.
김경아 코치는 “아직 어리다보니 경기 중 마지막까지 정신력을 발휘할 수 있는 체력 향상이 필요하다. 이번엔 유럽 선수들과 경기를 많이 하지 못해 상위 유럽 선수들의 강력한 서브를 받아낼 리시브 훈련도 필요하다”며 “앞으로 올림픽 준비를 잘 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상태에서 시합하면 도쿄에서 ‘깜짝 등장’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된다”고 말했다. 신유빈도 “긴장 돼서 손이 떨려도 (올림픽) 경기가 끝나면 후회가 안 됐으면 좋겠다”며 “제가 연습한 걸 다 할 수 있도록 훈련에 최선을 다 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기라성 같은 세계 랭커들을 상대로도 기죽지 않는 신유빈이지만, 도쿄를 향한 메달 여정에서 두려운 건 따로 있다. 바로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코로나19 백신 접종이다. “저 주사 진짜 싫어하는데, 어떡하죠? 올림픽보다 주사가 더 무서워요.”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