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갓길 英여성 살해한 경찰… “안전하게 걷고 싶다” 분노 폭발

입력 2021-03-15 05:25 수정 2021-03-15 05:25
1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남부 클래펌에서 열린 사라 에버라드 추모 집회에서 시민들이 휴대폰 손전등으로 불을 밝히고 있다. AFP 연합뉴스

영국에서 현직 경찰이 30대 여성을 납치, 살해하는 일이 벌어졌다. 여론이 분노로 들끓고 있다.

영국 런던 남부 클래펌에서는 코로나19 방역수칙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를 추모하기 위해 수백명이 모여 집회를 벌였다. 이들은 여성이 밤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목숨을 위협당한다면서 여성을 겨냥한 폭력을 멈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3일(현지시간) BBC 등은 마케팅 회사원 사라 에버라드(33)의 죽음 이후 영국 여성들이 거세게 분노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에버라드는 지난 3일 오후 9시30분쯤 친구집에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실종됐다. 1주일 후 숲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범인은 런던경찰청 소속 웨인 쿠전스(48)로 밝혀졌다. 경찰은 그를 납치 및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현직 경찰이 살인사건의 가해자로 붙잡히자 사회 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경찰이 “여성은 혼자 외출하면 안 된다”는 식으로 사건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발언까지 하면서 논란은 한층 커졌다.

1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클래펌 밴드 스탠드의 추모 현장에 모인 수백 명의 여성들. 로이터 연합뉴스

1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남부 클래펌에서 열린 사라 에버라드 추모집회에 "그만 죽여라"라는 글귀가 쓰인 피켓이 놓여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화난 영국 여성들은 SNS에 ‘그녀는 집으로 걷고 있었다’(#shewaswalkinghome) 같은 해시태그를 달면서 자신이 밤에 길거리에서 겪었던 두려움을 공유하고 있다.

한 여성은 트위터에 “에버라드 사건은 정말 나를 두렵게 한다. 그녀는 남자친구와 통화하고, 밝은 옷을 입고, 큰길을 걷고, 자정 전인데도 살해당했기 때문”이라는 글을 올렸다. 이 글은 9만7000개가 넘는 ‘좋아요’를 받았고 이외에도 “밤에 혼자 길을 걷지 못하는 게 정상이냐” “나는 안전하게 길을 걷고 싶다” 등의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거리 곳곳에선 에버라드를 추모하는 꽃다발 무덤이 세워졌다. 에버라드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장소에서 열린 추모집회에서 시민들은 헌화를 하고 촛불을 들었다. 그들은 “사라 에버라드를 기억한다. 우리는 에버라드다” “우리를 그만 죽여라” 등을 외쳤다.

경찰은 코로나19 규제 위반으로 최고 1만 파운드(약 15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했지만 이들은 굴하지 않았다. “부끄러운 줄 알라” “코로나19에 걸리는 거나 여성으로 위험하게 사는 거나 마찬가지”라며 항의했다.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이 13일 밤 총리 관저 대문 앞에 촛불을 켜 사라 에버라드 추모행렬에 동참했다. AP 연합뉴스

추모집회에는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비도 참석해 주목을 받았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트위터에 “오늘밤 (약혼녀) 캐리와 나는 에버라드를 위해 촛불을 켜고 그녀의 가족과 친구들을 생각할 것이다. 그들의 고통과 슬픔이 얼마나 견딜 수 없는 것인지 상상할 수도 없다”고 했다. 이어 “이 끔찍한 범죄에 대한 모든 해답을 찾기 위해 빨리 노력해야 한다. 거리를 안전하게 하고 여성과 소녀들이 괴롭힘이나 학대를 당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양재영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