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통 시장이 격변기를 맞고 있다. 쿠팡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성공적으로 데뷔하면서다. 쿠팡처럼 상장을 추진하거나 이종업계와의 합종연횡을 꾀하거나 인수·합병(M&A)으로 몸집을 키우려는 움직임이 뜨겁다. 떠오르는 이커머스 기업들과 만만찮은 유통 공룡들의 격돌로 급격한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14일 유통·이커머스 업계에 따르면 쿠팡 발(發) 업계 재편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그동안 시장 선점을 위해 투자와 마케팅에서 출혈 경쟁을 벌여왔던 이커머스 기업들이 안정적으로 재원을 확보하면서 시장 재편에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쿠팡이 미 증시 상장으로 5조원대 자본을 확보하면서 공격적인 투자와 마케팅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뭐든 해야 한다’는 절박함도 묻어난다.
쿠팡 성공 신화, 우리도 쓸 수 있다
쿠팡처럼 상장으로 성장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기업들이 눈에 띈다. 증시 상장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던 마켓컬리는 올해 안에 상장을 추진한다.
운영사인 컬리 김슬아 대표가 최근 팀장급 이상 직원들에게 연내 상장 추진 계획을 공유했다. 국내 상장을 추진할지 미국 상장을 추진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마켓컬리를 8억8000만달러(약 1조원)의 가치를 가진 기업이라고 소개했다.
티몬은 지난해 말부터 올 하반기에 국내 증시 상장을 목표로 뛰고 있다. 지난해 미래에셋대우를 기업공개(IPO) 주관사로 선정하고, 전인천 전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영입하고, 지난달 305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해 자본결손금을 해결하는 등 상장을 위한 준비를 이어가고 있다.
업계에서는 아마존의 지분 투자를 받은 11번가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SSG닷컴도 상장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늦어도 2023년까지는 상장을 추진한다고 밝혔던 11번가는 업계 환경이 급변하면서 추진 시기를 앞당길 가능성이 커졌다.
적자 폭을 줄이고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는 SSG닷컴 또한 상장이 예상되는 기업이다. 오프라인을 넘어 온라인으로까지 확장해 나가고 있는 CJ올리브영은 2022년 상장을 위해 최근 프리 IPO에 성공했다. 올리브영 몸값은 1조8000억원 정도로 매겨졌다.
IT·유통 기업 간 합종연횡·M&A 시장도 치열
유통·IT 공룡들은 합종연횡과 M&A로 돌파구 마련에 나섰다. 이마트와 네이버는 지난달 말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가 만나 협력을 논의했다.
네이버는 지난해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 1위(17%)였다. 쿠팡(13%)이 네이버 뒤를 바짝 쫓고 있다. 이커머스 업계 1위인 네이버와 오프라인 유통업계 1위인 이마트의 협력으로 강력한 시너지를 낼 것으로 관측된다.
네이버는 약점이었던 신선식품 부문을 강화할 수 있고, 이마트는 온라인 시장 침투력을 높일 수 있다. 업계에서는 2000억원대 지분 맞교환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커머스 시장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 하고 있는 롯데는 매물로 나온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에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G마켓과 옥션을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는 지난해 업계 3위(12%)였고, 이커머스 업계에서 유일한 흑자 기업이다.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에는 쇼핑 분야가 약한 카카오도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은 롯데그룹과 카카오의 경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5조원대 매물인 이베이코리아는 M&A 시장에 나왔을 무렵 ‘너무 비싸서 살 만한 기업이 없다’는 게 중론이었으나 쿠팡의 미 증시 상장으로 상황이 달라졌다”며 “이베이코리아를 누가 가져가느냐에 따라 시장 순위가 급격히 뒤바뀔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M&A에 뛰어들 것이라는 추측도 나왔으나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김범석 쿠팡 의장이 지난 12일 뉴욕에서 진행된 특파원 간담회에서 “M&A에 대해 문을 닫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많은 분석과 고민을 통해 옳은 판단이라고 확신이 서지 않으면 안 하는 편”이라며 에둘러 선을 그으면서다.
한편 쿠팡은 지난 11일 공모가 35달러로 상장했으나 12일 종가 기준 48.47달러로 마감했다. 이로써 쿠팡의 시가총액은 831억3300만달러(94조4805억원)에 이르렀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