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달 중순 북·미 간 물밑접촉을 시도했으나 북한이 일절 호응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구체적인 대북 정책을 세우지 못한 바이든 행정부와의 대화는 실익이 없다는 계산하에 무응답으로 일관한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통신은 13일(현지시간) 익명을 요구한 바이든 행정부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뉴욕을 포함한 여러 채널을 통해 북한 정부에 접촉하기 위한 노력들이 지난 2월 중순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 약 한 달 만에 북한과의 외교적인 접촉을 시도했다는 뜻이다. 다만 이 당국자는 “현재까지 우리는 평양으로부터 어떠한 답변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미 정권교체기마다 반복되는 북한의 무력도발을 차단하고, 본격적인 비핵화 협상에 앞서 북한의 의중을 가늠하기 위해 접촉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북·미 간 대화 채널 중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통로인 ‘뉴욕 채널’을 비롯해 ‘스웨덴 채널’ ‘오스트리아 빈 채널’ 등의 경로를 활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북한 외무성 북아메리카 부국장으로서 두 차례 북·미 정상회담 준비과정에 관여했던 최강일이 대사로 있는 오스트리아에서 접촉을 시도했을 가능성이 있다. 국제기구가 모여있는 스위스 제네바도 북·미 접촉 창구로 거론된다.
북한은 그러나 외교안보 라인 인선과 대북 정책 수립을 끝내지 못한 바이든 행정부를 상대로 대화에 나설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14일 “북한은 미국이 내놓을 대북 정책의 세부적인 내용을 확인한 뒤 대화에 나서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며 “미국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이면 ‘북한이 대화에 간절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고 무응답으로 일관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을 준비도 되지 않은 상대에게 자신들이 들고 있는 패를 먼저 보일 필요는 없다는 게 북한 당국의 생각이라는 얘기다.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을 중심으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비핵화 협상 전략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구체화할 때까지 북한의 침묵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성 김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 대행은 미국 신행정부의 대북 정책 검토 작업이 몇 주 안에 끝날 것으로 예상했다. 일각에선 북한이 미 국무·국방부 장관의 방한을 전후해 미국을 크게 자극하지 않는 수준의 메시지를 내놓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