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인류가 기르는 반려동물 가운데 그 숫자가 가장 많습니다. 독일의 통계전문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전 세계 4억7000만 마리로 추정되며, 한국에서는 2019년 농림축산식품부 기준 209만 마리입니다. 숫자가 늘어나면서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반려견의 신원을 파악하기 어려워졌다는 겁니다. 같은 종끼리는 생김새가 비슷하고 내장 인식칩을 강제해도 등록률이 30%에도 미치지 못하죠.
동물 기업들은 생체인식에 주목합니다. 65억 인간이 홍채, 지문 무늬로 인증하듯 5억 반려견도 중복 확률이 0%인 고유한 신체 무늬가 있지요. 그것은 코 무늬, 비문(nose mark)입니다. 개의 코를 갖다 대기만 해도 가족을 찾고 단골 상점에서 물건을 살 수 있답니다.
DNA 검사보다 정확하다고? 비문의 놀라운 정확도
비문은 개마다 고유하며 그 무늬는 평생 변하지 않습니다. 그 정확도는 개의 홍채, DNA 감식보다 뛰어날 정도이죠. 북미의 대표적인 애견협회인 캐나다캔넬클럽(CKC)은 1938년부터 비문을 활용했습니다. 당시에는 개의 코에 잉크를 묻히고 그것을 도장 삼아 종이에 찍는 수준이었죠.
21세기 들어 비문 기술은 인간의 지문인식 수준으로 급격히 발전합니다. 일정한 문양(패턴)을 인식하는 인공지능(AI) 기술과 고화질 스캐너의 등장 덕분이죠. 백만분의 1m인 마이크로미터 단위로 분석하므로 수백만 개의 비문을 하나하나 구분할 수 있는 겁니다.
이제는 카메라 해상도가 뛰어나 간편하게 비문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등록 순서는 이렇습니다. 먼저 보호자가 직접 휴대전화 카메라로 반려견의 코를 촬영합니다. 이를 비문을 추출하는 프로그램에 입력합니다. 마지막으로 추출한 코 무늬를 AI 시스템에 입력합니다.
이제 스캐너에 ‘몽이’의 코를 갖다 대세요. AI가 데이터베이스에서 ‘몽이’의 신체정보와 최근 구입한 애견용품 목록을 전송해줄 겁니다.
“인식칩 싫다고요? 코 무늬를 입력하세요”
비문을 일상에 적용하려면 두 가지 AI 기법을 구현해야 하죠. 첫째는 여러 개의 비문 가운데 정확도 95% 수준에서 후보들을 추려내는 기술, 둘째는 기존 비문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을 고르는 정밀 기법입니다. 빠르게 후보군을 골라낸 뒤 정확하게 대상을 찾는 식이죠.
세계 최초로 비문 인증기술을 개발한 기업은 미국의 스놋스캔(SNOUTSCAN)입니다. 스놋스캔은 특허 등록한 지난 2005년 “확대 촬영으로 정확한 비문 이미지를 얻고 이를 모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다”고 소개했습니다. 비문 기술로 반려견의 보호자를 찾아주는 기법이었지만 흥행에는 실패했지요.
대박 난 사례는 따로 있습니다. 지난 2019년, 중국의 AI 스타트업 메그비(Megvii)입니다. 메그비는 이 기술로 온라인쇼핑몰을 공략했습니다. 사람 대신 반려견을 고객으로 등록하고 쇼핑 리스트를 관리하는 발상의 전환이었죠.
효과는 대단했습니다. 기업 투자정보 사이트인 야후 파이낸스에 따르면 메그비는 총 14억 달러(약 1조6000억원)의 투자를 받았고 중국 최대 온라인 유통업체 알리바바에 기술을 공급합니다. 메그비의 직원 수는 고작 6명에 불과합니다.
개의 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돌토돌 알갱이가 특이한 무늬를 이루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문양이 반려동물 경제의 한 획을 그을 줄 누가 알았을까요. 반려견의 몸에 인식칩을 심는 대신 간단히 비문을 촬영하는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