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서거 83주기를 맞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사진이 온라인상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10여 년 동안 눈에 띄게 수척해진 안창호 선생의 모습에 많은 이들이 숙연해졌다.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조광·이하 편찬위)가 소장 중인 일제강점기 인물들의 신상을 정리한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신상카드)’에는 안창호 선생의 사진 여러 장이 붙어있다.
첫번째 신상카드는 1925년 10월 20일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안창호선생의 모습으로 단정한 정장 차림을 한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편찬위는 “이 사진이 (안창호가) 경찰에 체포되어 찍은 사진이 아니다”고 했다. 신상카드에 죄명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점 등을 고려해 이 신상카드는 경찰이 안창호 선생의 동향을 감시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932년 7월 4일에 만들어진 두번째 신상카드에서 안창호 선생의 모습은 과거와 달리 눈에 띄게 수척한 모습이다.
당시 안창호 선생은 중국 상하이에 있다가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 훙커우공원 의거 여파로 경찰에 연행되어 국내로 압송됐다. 이후 2년 6개월의 옥고를 치르고 1935년 2월에 가출옥(가석방)했다. 죄명은 ‘치안유지법 위반’이었다.
편찬위는 이 사진에 대해 “혹독한 수감생활로 점점 야위어가는 (안창호) 선생의 안색이 독립운동가의 고단한 삶을 보여주는 듯하다”고 말했다.
안창호 선생의 세번째 신상카드는 1937년 11월 10일에 만들어진 것이다. 1937년 6월 안창호 선생은 ‘동우회 사건’으로 다시 체포됐다. 일제는 계몽운동에 앞장선 동우회 관계자 180여 명을 체포했으며 안창호 선생도 속해 있었다.
편찬위에 따르면 당시 안창호 선생은 앞선 수감생활로 이미 건강이 크게 악화된 상태다. 이후 그는 병보석으로 풀려나기는 했지만 결국 1938년 3월 10일 순국했다.
안창호 선생의 변화 모습을 본 네티즌들은 “그동안 첫번째(1920년대) 사진만 봤었는데 고생을 너무 많이 하셔서 수척해진 모습을 보니 눈물난다”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든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는 일본이 체포하거나 감시대상으로 삼은 독립운동가의 신상정보를 담은 카드다. 이 신상카드에는 사진과 출생일·출생지·주소지·신장 등의 신상정보, 각종 활동 기록, 검거 기록 등이 담겨 있다.
편찬위에 따르면 현재 남아 있는 신상카드에 수록된 인물은 총 4857명이다. 이 중 한용운, 안창호 선생 등 여러 차례 체포된 인물의 경우 신상카드도 여러 차례 만들어졌기 때문에 남아있는 신상카드는 총 6264건이다.
김아현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