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 매수해보겠다” 경찰 돕다 마약범 된 교포 사연

입력 2021-03-12 10:07

마약 범죄 증거를 수집할 목적으로 마약을 구매했다가 재판에 넘겨진 40대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심 판결을 뒤집은 항소심 재판부는 “마약류를 매매할 고의가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부연했다.

법조계는 12일 서울고법 형사5부(윤강열 박재영 김상철 부장판사)가 마약류관리법 위반(향정) 혐의로 기소된 카자흐스탄 국적의 한인 교포 남성 A씨(40)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A씨는 앞선 1심에서 마약을 매수한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지난 2018년 10월 A씨는 이른바 ‘스파이스’로 불리는 신종 마약을 매수했다. 당시 한국어를 거의 못하는 A씨는 거주지 근처에서 외국인들이 마약을 거래한다고 경찰에 제보했다가 ‘제보만으로는 명확하게 조사할 수 없으니 가능하면 사진 같은 증거자료를 확보해달라’는 담당 경찰관의 말을 통역인에게서 전해 들었다.

이에 직접 증거 확보에 나서기로 마음먹은 A씨는 통역인에게 ‘증거자료로 약물을 가져다드리면 되는 것이냐, 가능하다면 잠입해서 약물을 매수해보겠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몇 시간 뒤 A씨는 스파이스를 사서 사진을 찍었고, 경찰관에게 마약 사진을 전송한 후 이를 변기에 넣어 폐기했다.

경찰은 A씨의 제보와 수사 협조 덕분에 마약을 매매한 8명의 사범을 구속했다. 그러나 이후 A씨도 마약을 매수했다는 혐의로 2019년 3월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다.

1심 법원인 인천지법은 A씨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며 “증거 수집 목적이었더라도 수사기관의 지시나 위임을 받지 않고 매매한 이상 범행의도가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항소심인 2심 재판부는 A씨가 “수사 기관의 구체적 위임과 지시를 받아 매수한다고 인식했을 것”이라며 피고인인 A씨가 통역인을 통해 마약류 거래 증거를 확보해달라고 요청받은 점, 스파이스 마약 매수 직전 통역인에게 보고한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또한 재판부는 “피고인의 소변과 모발에서 마약 성분이 검출되지도 않았다”며 “개인적 목적으로 매수했다면 매수 예정 사실을 통역인에게 보고하거나 사진을 찍어 경찰관에게 전송할 아무런 합리적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노유림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