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커창, 미·중 회담 앞두고 “힘 합치면 이롭고 싸우면 손해”

입력 2021-03-11 21:24 수정 2021-03-11 21:48
리커창 중국 총리가 11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폐막 기자회견에서 미중 관계, 홍콩 선거제도 개편에 관한 중국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리커창 중국 총리가 다음 주 미·중 고위급 회담을 앞두고 “양국이 힘을 합치면 이롭고 싸우면 서로 해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을 세계 최대 선진국, 중국을 최대 개발도상국으로 지칭하며 “양국이 공통의 이익을 갖고 있고 협력할 수 있는 분야가 많다”고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했다.

리 총리는 11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폐막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대미 정책을 조정해 미국과 관계 회복을 추진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리 총리는 “최근 몇 년간 미·중 관계는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고 양국과 세계 모두에 악영향을 끼쳤다”고 진단했다. 이어 “미국과 중국이 수교한 지 40년이 지나는 동안 험난한 파도를 헤쳐나갈 수 있었던 건 그것이 양국의 근본 이익과 세계 추세에 부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리 총리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전화 통화한 사실을 언급하며 “양국은 서로의 핵심이익과 중대 관심사를 존중하고 내정에 간섭하지 않으며 불충돌, 불대항, 상호 존중, 협력 공영의 원칙을 가지고 양국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중국의 대미 외교 원칙이다. 또 “미·중은 역사와 문화, 사회제도, 발전단계가 달라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면서 “대화를 통해 한 번에 합의점을 찾지 못하더라도 갈등 관리와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리 총리는 미·중 갈등이 극에 달했던 지난해 양국 무역 규모가 4조1000억위안(약 716조원)으로 8.8% 증가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양국은 공통 분모에 집중해 공동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며 “미·중 관계가 험난한 파고를 넘어 총체적이고 안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리 총리의 이같은 발언은 오는 18일(현지시간) 미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서 열리는 미·중 고위급 회담 전 대화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한 메시지로 해석된다. 미국에선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중국에선 양제츠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과 왕이 외교부장이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직접 만나 다양한 현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레지나 입 신민당 주석(가운데)을 비롯한 홍콩의 친중 의원들이 11일 홍콩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의결한 홍콩 선거제 개편에 대한 지지 입장을 밝히고 있다. AFP연합뉴스

전인대는 이날 미국의 반대에 아랑곳하지 않고 반중 세력의 공직 출마를 막는 홍콩 선거제도 개편안을 통과시켰다. 전인대 대표 2896명이 표결에 참여해 기권 1명을 뺀 2895명의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됐다. 반대한 이는 1명도 없었다.

중국의 홍콩 선거제도 개편 강행은 예고됐던 일이지만 미·중 고위급 회담 분위기를 얼어붙게 만들 수 있는 껄끄러운 이슈다. 블링컨 장관은 10일(현지시간)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우리는 홍콩에서 일어나는 지독한 인권 침해에 목소리를 내고 행동을 취해야 한다”며 홍콩에 대한 추가 제재를 경고했다.

그러나 리 총리는 “서로의 핵심 이익과 중대 관심사를 존중하고 내정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로 미국 주장을 일축했다. 그러면서도 양국이 협력할 분야가 많다며 관계 재정립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한편 리 총리는 지난해 5월 전인대 폐막 기자회견에서 중국 인구의 40%에 달하는 약 6억명이 월수입 1000위안(약 17만원)으로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역점 사업인 빈곤 퇴치의 성과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돌출 발언이었다. 리 총리는 올해 기자회견에선 홍콩 선거제도 개편 필요성과 과학 기술 자립,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경제 발전 유지 등을 강조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