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처음 (사직야구장에) 들어왔을 때 다 선배 같더라고요. 어린 나이에 한국을 떠났기 때문에 어떤 선수가 선배인지, 후배인지 몰라서 다 인사했죠.”
20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SSG 랜더스 유니폼을 입고 뛰게 된 추신수(39)가 가장 신경 쓰는 건 프로야구 KBO리그 적응이다. 그 중 무엇보다도 같은 팀원들과의 융화가 최우선적 과제다. SSG에 합류한 추신수가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에게 등번호 ‘17번’을 양보한 이태양(31)에게 답례 선물을 주는 것이었다.
추신수는 11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KBO리그 롯데 자이언츠와 SSG의 연습경기 뒤 3루 더그아웃 쪽 그라운드에서 열린 상견례 도중 이태양에게 고가의 시계를 선물했다. 빨간색과 파란색 색깔로 이뤄진 이 시계는 스위스 R사의 제품으로, 약 2000만원 가량의 고가로 알려졌다. R사가 ‘추신수 에디션’을 발매할 정도로 추신수는 이 회사 제품을 애용해 왔다고 알려졌다.
추신수는 이 시계를 이태양에게 전하면서 “어렸을 때부터 제 이름 뒤에 항상 17번이 있었을 정도로 17번은 저에게 의미 있는 번호”라며 “선수들에게 등번호가 갖는 의미가 커서 제가 먼저 말하기 힘들었는데 이태양 선수가 먼저 양보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추신수에게 등번호 17번은 그만큼 각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부산고 시절 고교 무대를 누비던 때에도 추신수의 등엔 17번이 새겨져 있었다. 미국 진출 뒤 마이너리그 시절엔 54번, 61번, 16번 등을 달고 뛰기도 했지만, 메이저리거로 정착한 뒤에는 항상 17번 배번을 달고 활약을 이어나갔다.
추신수는 상견례 뒤 기자회견에서 “제가 살아보니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받으면 감사하고 고맙다는 표현을 해야 하는 것”이라며 “17번은 야구선수 추신수와 뗄 수 없는 애착 가고 소중한 번호다. 이태양 선수가 먼저 양보해줘서 고마운 마음을 받았을 때 기억에 남는, 좀 더 특별한 선물로 전하고 싶어 미국에서부터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면서도 아직까지 고맙다. 저한테 누가 17번을 달라고 하면 못 줬을 것 같다”고 덧붙이며 웃었다.
갑작스럽게 선물을 받은 이태양은 구단을 통해 “이렇게 고가의 선물을 받아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며 “추신수 선배에게 좋은 기운을 받은 것 같은데, 올해 맹활약을 펼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기뻐했다.
‘선물 이벤트’를 준비한 것도 어떻게 보면 추신수가 빠르게 팀에 녹아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미국에서 오래 활약한 추신수가 올해 목표로 삼은 우승을 이루기 위해선 무엇보다 KBO리그와 팀 적응이 급선무다. 추신수도 “일단 선수들의 이름, 나이, 호칭, 관계까지 익혀야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을 정도.
상견례 때도 추신수는 선수들에게 “일단 제가 먼저 배워야 할 것 같다. 아직 부족한 만큼 먼저 많은 부분에서 도움을 요청드리겠다”며 “(한국행) 마음 결정할 수 있었던 건 이기기 위해서다. 좋은 경험 쌓으러 온 게 아니라 이 팀에서 모든 선수들과 한 마음이 돼 이기려고 왔다. 제가 모르는 게 있다면 언제든 와서 얘기해 달라. 저를 안 어려워했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고 한다.
김원형 SSG 감독은 추신수의 적응에 큰 걱정 없는 눈치다. 김 감독은 “슈퍼스타이기에 친근한 성격이 아니라면 걱정 될 법 하다”면서도 “추신수는 오히려 다가가는 성격이란 얘기를 들었다. 계약할 때도 (추신수가) 먼저 팀에 융화한다고 했고, 우리 선수들도 성향이 대체적으로 다 좋아서 처음부터 친근하게 지낼 것 같다”고 흐뭇해했다.
부산=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