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좌파 진영의 거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75) 전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실형 무효 선고를 받은 지 이틀 만에 대중연설에 나서 “멍청하다”며 현 대통령인 자이르 보우소나루를 맹공격했다. 자신을 구속되도록 만든 권력형 부패 수사에 대해서도 “사기였다”며 맹비난했다.
브라질 금속노조 위원장 출신인 룰라 전 대통령은 이날 상파울루시 인근 금속노조 건물에서 진행한 대중연설을 통해 “나는 브라질 500년 역사상 사법 사기의 최대 피해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연방판사 시절 ‘라바 자투’(Lava Jato, 세차용 고압 분사기)라는 이름의 권력형 부패 수사를 이끌어 자신을 구속시킨 세르지우 모루 전 법무부 장관을 거세게 비난했다.
이날 연설은 지난 8일 브라질 연방대법원의 에지손 파킨 대법관이 라바 자투 과정에서 룰라 전 대통령에게 선고된 실형을 모두 무효로 한다고 판결한 지 이틀 만에 열렸다. 지난 2019년 라바 자투를 진두지휘했던 모루 전 장관이 연방판사 신분으로 연방검사들에게 룰라에 대한 유죄 판결과 수감을 끌어낼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폭로가 나오면서 라바 자투에 대한 여론이 급변했고 결국 대법원 판결로까지 이어졌다.
뉴욕타임스(NYT)는 라바 자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반부패 수사였지만 동시에 브라질 역사상 가장 큰 사법 스캔들이었다고 평가했다.
룰라 전 대통령 본인은 내년 대선에 출마할 것인지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시간 반 동안 진행된 연설은 대선 출마 출정식을 방불케 했다는 평가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룰라 전 대통령이 대선 도전에 대한 명백한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정치에 복귀한다는 의사는 분명히 했다”고 전했다.
룰라 전 대통령은 연설에서 “어머니는 내게 ‘계속 싸우는 일’에 대해 가르쳐주셨다”며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브라질 전역을 여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적들은 내가 더 정의로운 세상, 더 인간적인 세상을 만들길 원한다는 이유로 나를 급진적이라고 부른다”고 덧붙였다.
룰라 전 대통령은 특히 “보우소나루 정권의 멍청한 정책을 따르지 말자. 백신을 맞자. 그것만이 코로나19 사태에서 벗어나는 길”이라며 현 정부와 각을 세웠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그간 “코로나19는 독감 같은 것” “백신 안 맞는 건 내 권리” “백신은 우리집 개한테나 필요” 등의 막말로 논란을 자처했다. 브라질 코로나19 대응 실패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룰라 전 대통령은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코로나19 사망자가 나온 자국 현실을 지적하며 “죽음의 상당수는 피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백신의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며 제때 확보하지 못해 피해를 키웠다는 것이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