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전 동료들에게서) 연락이 오진 않더라고요 하하. 아 저기(울산)서도 준비를 많이 하고 있구나 생각하고 저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올 시즌 첫 동해안더비를 이틀 앞둔 11일 기자단과 화상 기자회견에 나선 포항 스틸러스 베테랑 신진호(32)는 일부러 무덤덤한 표정을 짓는 듯했다. 상대편으로 기자회견에 참석한 전 울산 현대 동료이자 후배 원두재가 반가움에 미소를 참지 못하는 것과는 대비됐다. 신진호는 “이번 주 울산 선수들과 연락을 해본 적은 없고, 그렇다고 굳이 연락을 안 해야겠다 생각은 안했다”면서 “경기가 끝나고 난 뒤에는 동료로서, 축구선수로서 함께 한 추억이 있기 때문에 결과가 나온 다음에는 마음 편하게 연락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번 동해안더비는 김기동과 홍명보라는 양 팀 감독 간 대결로도 주목 받지만 신진호에도 그만큼의 시선이 쏠린다. 그는 바로 전 시즌 울산의 역대 두번째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우승 시상식에서는 주장으로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세리머니의 주인공 역할을 했다. 이적 뒤 첫 시즌 그는 양 팀간의 동해안더비를 앞두고서 친정팀 포항에 “골을 넣고 포효하는 세리머니를 하겠다”며 도발한 이력도 있다. 포항 선수복을 입고 뛰는 울산 전 시즌 주장의 이번 경기 활약이 더욱 기대를 받는 이유다.
스틸야드로의 귀환
신진호는 포항 유소년 출신이다. 2011년 포항에서 데뷔한 뒤 임대 시절을 빼고는 2015년까지 머물며 준주전급 선수로 활약, 기량을 인정받았다. 자유계약으로 옮겨간 FC 서울에서 6경기 동안 돋보인 뒤 입대해 상주 상무에서 주전으로 뛰었다. 제대 뒤 서울에서 한 시즌을 보낸 그는 이후 2019년 이적한 울산에서 최고로 만개했다. 비록 리그 우승까지 이르진 못했지만 신진호가 단단하게 자리잡은 중원은 울산 팬들의 자랑거리 중 하나였다. 마지막 시즌인 지난해는 ACL 우승을 따내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울산 이적 첫해였던 2019년 5월 신진호는 10라운드 동해안더비에서 친정 포항을 상대로 원정골을 터뜨린 기억도 있다. 울산이 선제골을 내주고 뒤지던 당시 그는 오른쪽 측면에서 날아온 크로스를 받아 호쾌한 중거리슛으로 연결, 동점을 만들어냈다. 득점 뒤 그는 잔디 위를 미끄러지면서 경례 세리머니를 해 울산 팬들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스틸야드에서 성장한 신진호가 포항 골망에 공을 꽂아넣는 것을 보며 싸늘하게 식어있던 홈 관중석 모습, 이와 대비되어 열광하는 맞은 편 울산 원정 팬들의 모습은 동해안더비 역사를 장식한 명장면 중 하나다.
신진호는 “최근 (리그) 경기에서 동해안 더비 무승부가 없는 걸로 안다”면서 “양 팀이 수비적인 팀이 아니기 때문에 득점 상황은 많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득점하면 세리머니를 할 것이냐는 질문에 웃으며 “너무 예상했던 질문”이라 답한 그는 “세리머니라는 게 기쁨의 표현이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자극적으로 비쳐지거나 제가 표현한 것과 다르게 왜곡되어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상대방을 존중하는 상태에서 제 나름 기쁨의 표현을 하고 싶다. 상대 서포터를 자극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포항의 패스 줄기, 신진호로부터
신진호의 올 시즌 포항에서의 비중은 수치에서 드러난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이 11일 국민일보에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이 경기들에서 신진호는 패스를 총 275회 시도해 단 36회만 실패했다. 패스 성공률은 86.9%로 3경기를 모두 뛴 선수 중 수비수를 제외하면 88.1%인 고영준 말고 그보다 나은 선수가 없었다. 고영준이 대부분 교체로 출전하며 3경기 도합 115분 뛴 것을 고려하면 포항의 패스 줄기는 사실상 신진호가 잡고 있는 셈이다.
패스의 질도 좋다. 신진호가 현재까지 만든 키패스는 총 3개다. 현재까지 팀에서 그보다 많은 키패스를 기록한 건 지난해 상주 상무에서 도움왕을 차지했던 강상우(5개) 밖에 없다. 공격지역으로의 패스는 총 60개로 팀에서 가장 많다. 공격지역 전진패스 성공횟수도 7개로 8개인 송민규에 이어 팀내 2위고, 성공률을 따지면 77.8%로 포항의 전 경기 출전 선수 중 압도적인 선두다. 총 인터셉트 횟수는 8개로 수비수인 권완규의 12개에 이어 팀 내 2위다.
그는 상대를 향한 분석 역시 열심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신진호는 울산 플레이의 특징을 묻는 질문에 꽤나 상세한 해설을 내놨다. 그는 “아무래도 울산이 앞쪽에서부터 압박을 강하게 하는 것 같다”면서 “저희도 특별히 내려서거나 하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울산의 뒷공간을 노려야 한다. 그런 부분에서 데미지를 준다면 많은 찬스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봤다. 중앙 미드필더로서 상대 뒷공간을 노릴 계획을 내비친 셈이다.
신진호는 “울산의 앞선 3경기를 보면 득점이 굉장히 많다. 김인성도 득점을 많이 하고 이동준도 공격에서 좋은 장면을 만들어내며 포인트를 쌓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김인성의 득점을 보면 개인적으로 뭘 만드는 느낌이라기보다 오른쪽에서 김태환 이동준이 크로스로 상황을 만들 때 쇄도하며 득점을 많이 만드는 형태 같다”면서 “이동준과 김인성의 빠른 발을 잘 대비해야 한다. 일차적으로 전방에서 뒷공간에 패스가 안 들어오게 공에 근접한 선수들이 압박을 많이 해야 될 듯하다”고 전망했다.
“져선 안되는 경기”
홈팀인 포항 구단은 이날도 이전 홈경기와 마찬가지로 스틸야드 관중석 중 4007석을 개방할 예정이다. 포항 관계자에 따르면 경기 이틀 전인 11일 오후 기준으로 이미 표가 매진에 가깝게 예매된 상태다. 포항으로서는 초반 2연승 뒤 제주 유나이티드에 얻어맞은 1패로부터 다시 분위기를 반전시켜야 한다. 울산은 개막 뒤 만난 상대 중 가장 난적인 포항을 넘어선다면 연승 분위기를 한층 더 끌어올릴 수 있다.
수없이 맞은 동해안더비이니만큼 신진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리그 중 한 경기’라며 다른 경기와 똑같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선수들이 그 누구보다 이번 경기의 중요한 점 잘 알고 있다. 절대 물러섬 없이 경기에서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으려 준비하고 있다”면서 “여느 경기와 다르지 않게 준비하겠지만 이기겠다는 마음만은 꼭 가지고 임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