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입법 기관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11일 홍콩 민주 진영 인사들의 공직 출마를 막는 선거제도 개편안을 통과시켰다. 홍콩 내 반정부 활동을 감시·처벌하는 국가보안법 시행에 이어 중국의 홍콩 통제가 한층 강화됐다. 미국은 홍콩 선거제 개편 시 추가 제재를 예고한 터라 미·중 갈등이 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인대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13기 4차 전체 회의에서 찬성 2895명, 기권 1명으로 ‘홍콩 특별행정구 선거제도 완비에 관한 결정안’을 의결했다. 반대는 1명도 없었다. 인민대회당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에 표결 결과가 공개되자 참석자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애국자가 홍콩을 다스려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한 뒤 이를 실현할 선거제도가 마련된 것이다. 구체적인 개편 내용은 전인대 상무위원회가 결정하고 이후 홍콩 관련법을 개정해 시행에 들어간다.
선거제도 개편에 따라 현재 70명인 입법회 의원 수는 90명으로 늘어난다. 선출직 35명, 직능대표 35석으로 돼 있던 것을 각각 30석으로 줄여 60명을 뽑고 나머지 30명은 행정장관 선거인단에서 선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홍콩의 행정 수장인 행정장관을 뽑는 선거인단 수도 1200명에서 1500명으로 확대된다. 이중 야당이 장악하고 있는 구의원 몫(117석)은 없어지고 친중 단체가 그 자리를 채울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선거 입후보자의 자격을 심사하는 고위급 위원회가 설치된다. 위원회는 선거 입후보자의 경력과 과거 정치적 언행 등을 따져 출마 여부를 가리게 된다. 결과적으로 중국 중앙정부가 선호하는 인물이 홍콩의 입법 및 행정을 장악하게 되는 셈이다. 이에 따라 범민주 진영의 정치적 입지는 더욱 좁아지게 됐다.
당초 홍콩은 오는 9월 입법회 선거를 치를 예정이었지만 선거제도 개편에 따라 한 번 더 연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홍콩은 지난해 9월 입법회 선거를 앞두고 범민주진영의 과반 확보 가능성이 커지자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선거를 1년 연기했었다.
전인대 표결 하루 전인 10일(현지시간)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우리는 홍콩에서 일어나는 지독한 인권 침해에 관해 목소리를 내고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홍콩에서 억압적인 행위를 저지른 이들에 대한 제재를 계속 이행할 필요가 있다”며 “기업인들이 홍콩에서 사업을 하고자 한다면 그들이 기억해 둬야 할 제재가 있다”고 강조했다. 홍콩 선거제 개편 문제는 오는 18~19일 미국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서 열리는 미·중 고위급 회담에서도 다뤄질 가능성이 높다.
전인대는 이날 회의에서 올해부터 적용되는 14차 5개년 경제발전 계획(14·5계획)과 2035년 장기 발전 전략도 의결했다. 미국을 넘어 세계 최강대국이 되기 위한 플랜을 본격 가동한 것으로 해석된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