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충북 청주시 청원구 정상마을. 땅을 파고 성냥갑처럼 동일한 모양의 조립식 주택을 짓는 공사가 분주하게 진행되고 있다. 정상마을을 포함한 이 일대 189만1574㎡는 충북개발공사가 오는 2028년까지 넥스트폴리스 산업단지 조성하기로 한 곳이다. 이 마을에는 일명 ‘벌집’(투기목적의 임시주택)으로 불리는 60㎡ 안팎의 조립식 주택이 60여 채에 달한다. 공사가 한창인 곳도 많았다. 잡초가 뒤섞인 논에는 보상을 노린 나무들이 빼곡히 심어져 있다. 이곳에는 지난해 6월부터 벌집이 난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충북도의회가 산업단지 조성계획을 승인한 시점이다.
이 마을 주민 A씨는 “산업단지가 들어선다는 소식이 알려진 지난해 여름부터 논과 밭에 나무과 조립식 집들이 들어서고 있다”며 “보상을 노린 투기로 의심된다”고 말했다. 그는 “조립식 건물에는 누가 사는 지 알 수가 없다”며 “조용하던 마을이 공사 차량과 외지인들로 시끄럽고 아늑하고 정겨운 모습도 사라지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주민 B씨는 “도대체 누가 이곳에 집을 짓고 있는 지 모르겠다”며 “60대 이상의 어르신들만 살던 마을에 젊은층의 외지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어 “고급 수입차도 쉽게 볼 수 있다”며 “돈 많은 사람들이 땅을 보러 다니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경기 광명·시흥지구 100억원대 땅 사전투기 의혹이 일파만파 커지는 가운데 지자체와 경찰이 지역 내 개발 사업에 대한 공직자 등의 투기 여부를 조사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충북도에 따르면 감사관실은 청주 넥스트폴리스산업단지와 오송 제3생명과학 국가산업단지, 음성 맹동 인곡산업단지 개발과 관련한 투기행위 여부를 조사한다.
대상은 넥스트폴리스와 음성 인곡산단 개발을 맡아 진행하는 충북개발공사 임직원(76명)과 오송3산단 조성 사업 관련 부서인 도청 바이오산업국(47명)과 경제통상국(100명) 소속 공무원이다.
도는 이들 산단 입지가 공식 발표된 5년 전부터 현재까지 근무한 이력이 있는 공무원과 공사 직원의 직계존비속까지 포함하면 인원은 적어도 3000여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도는 이르면 오는 15일부터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대상자로부터 각각 동의서를 받아 토지거래 내역을 국토교통부에 의뢰할 방침이다.
인곡산단은 음성군 금왕읍 유촌리·맹동면 인곡리 일원 171만5590㎡에 들어선다. 도가 추진하는 오송3산단은 청주시 흥덕구 오송 일원에 6.75㎢ 규모로 지어진다. 이곳에는 바이오의약과 의료기기 관련 기업 등이 입주한다.
충북도 관계자는 “지자체 자체적으로 전수 조사를 통해 투기 의혹을 밝혀낼 것”이라며 “대상자만 3000명에 달해 조사에만 수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충북경찰청도 부동산 투기 관련 범죄를 전담할 수사팀을 구성했다. 전담수사팀에는 수사과장과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 수사관 등 26명이 참여한다. 수사팀은 공공기관 임직원의 부동산 내부정보 부정 이용, 개발예정지 농지 부정취득·토지 불법 형질변경 등 보상 이익을 노린 부동산 투기, 불법전매·차명거래·미등기전매·불법중개 등을 단속한다.
충북경찰청 관계자는 “자치단체의 고발이나 의뢰가 들어오면 즉시 수사에 착수할 방침”이라며 “공무원 가족·친인척 등 차명으로 숨겨진 투기사범에 대한 주민들의 적극적인 신고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청주시도 산업단지 개발사업과 관련한 공직자 등의 투기가 있었는지 확인하기로 했다. 현재 거론되는 조사 대상 개발 예정지로는 민관 합동으로 개발이 추진되는 청주테크노폴리스(379만㎡·지구지정 2008년과 2019년)와 오창테크노폴리스(149만㎡·2017년), 서오창테크노폴리스(90만㎡·2020년) 3곳이다.
시는 또 인적 조사 대상에 공직자와 이들의 직계 존·비속까지 포함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시는 자체 조사에서 부당한 토지 거래가 의심되는 공직자는 경찰에 수사를 의뢰할 계획이다.
청주=홍성헌 기자 ad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