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마비 아들 은만이로부터 시작된 베이비박스 사역

입력 2021-03-14 13:46 수정 2021-03-14 14:15
베이비박스 사역을 하고 있는 주사랑공동체 이종락 목사가 아이를 안고 있다. 신석현 인턴기자

주사랑공동체 사역들은 내 아들 은만이로부터 시작됐다. 왼쪽 볼에 임파선 혹을 갖고 태어난 은만이는 생후 4개월 만에 바이러스가 뇌로 전이됐다. 아들은 33년간 전신 마비로 침상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냈다. 아빠 엄마라는 말조차 할 수 없었고 움직일 자유도 없었다.

은만이를 통해 완악했던 내 마음에 긍휼함이 생기기 시작했다. 평생 병상에서 아픈 자녀를 간호하는 부모의 마음, 아기만은 살리고자 하혈하면서도 달동네에 있는 베이비박스까지 오게 된 엄마의 심정은 바로 내 마음이기도 했다.

우리 가족은 은만이와 30여년을 행복하게 살았다. 32세가 되던 2019년 2월 은만이는 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전신 마비로 양다리가 좌우로 뻗어있어 정밀 검사가 불가능했다. 은만이는 몸이 아파도 아프다는 말을 할 수 없었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고통을 대신할 수 없어 마음이 찢어지고 아팠다.

의사는 하나님께서 은만이를 부르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다. 몇 개월 후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은만이의 숨이 채 몇 분 남지 않았다고 했다.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나는 2시간 이상 떨어진 곳에서 공동체 일을 보고 있었다. 사무국장이 소식을 듣고 서둘러 운전대를 잡았다. 뒷좌석에서 울며 기도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은만아, 조금만 기다려다오. 주님, 아들의 생명을 조금이라도 연장해 주세요. 은만아 안 돼.’

다행히 우리는 은만이의 마지막을 함께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은만이의 눈을 마주하고 기도하면서 입맞춤으로 은만이를 주님께 보냈다. 주님의 품 안에 안겼는지 은만이는 천사의 미소를 지으며 2019년 8월 14일 33세 나이로 우리 가족에서 주님의 가족이 됐다.

이종락 목사(앞줄 왼쪽 첫 번째)와 가족, 동역자들이 2019년 8월 14일 경기도 군포 G샘병원에서 임종 직전의 은만이를 붙들고 기도하고 있다.

온몸으로 눈물을 흘리는 동안 등 뒤에서 따뜻하게 나를 위로하시는 주님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음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이제 됐다. 사랑하는 은만이를 직접 품을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

은만이는 어디 내놔도 사랑스러운 소중한 내 아들이었다. 주님께 보내고서야 알았다. 우리가 은만이를 돌본 것이 아니라, 은만이로 인해 내 완악한 인격이 변했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 수 있게 됐다는 것을….

지금까지 내 삶은 내가 이룬 것이 아니다. 고백했지만, 나는 부끄러운 삶을 살았다. 내게 주어진 소중했던 선물 은만이, 나를 믿고 지지해준 아내와 큰딸 지영이, 무엇보다 나는 그런 길을 계획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이 길로 인내하시고 내가 약할 때 새로운 길로 이끌어주신 하나님이 다 하셨다.

지금도 종종 사랑하는 아들 은만이가 사무치게 보고 싶다. 그러나 은만이를 통해 아직 내게 남겨진 일을 다른 은만이들을 위해서라도 멈출 수 없다. 은만이와 다시 만날 날을 소망하고 주님만을 의지하며 묵묵히 가고자 한다.

‘은만아, 아빠와 엄마는 네가 우리에게 와줘서 고마웠어. 사랑한다. 보고 싶다. 내 아들 은만아.’

<아빠가 하늘에 있는 은만이에게 보내는 편지>

은만아! 아픈 몸으로 지내오느라 많이 힘들었지? 남들에겐 특별한 아이였다지만 아빠에겐 그저 귀한 아들이었다.

일을 마치면 얼굴을 맞대고 무더운 하루를, 가벼운 농담을, 성경 이야기를…. 우리는 일상을 나누고 하루를 같이 살아왔지. 아들, 아빠는 너와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너로 인하여 시작된 일들, 그리고 내게 남겨진 사명….
바로 다른 은만이들을 돌보는 일에 있어서,
아들아! 약속하마. 아빠는 최선을 다하겠다. 너에게 부끄럽지 않으련다.

아들아,
잠시 너를 보내야 하지만, 이 아빠를 다시 만나는 날, 그때는 말해주겠니. 너희 힘들었을 삶과 우리 행복했던 기억들, 행여, 섭섭하다 느꼈을 이야기들. 아빠는 꼭 듣고 싶구나. 나는 아빠로서 어떠했는지, 응석도 투정도 아빠에게 한껏 말해주렴. 그때는 더 좋은 아빠가 되어줄게.

고마웠다 아들! 아빠의 아들로 와 줘서. 아빠의 전부가 되어줘서. 그동안 아빠의 소중한 아들로 살아줘서.
정리=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