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안 잠근 캐비닛서 ‘X파일’ 유출됐나… LH 보안 엉망

입력 2021-03-11 13:48 수정 2021-03-11 14:38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주요 부서에서 공문서 등이 담긴 캐비닛과 서랍을 잠그지 않거나 컴퓨터를 켜놓은 채 퇴근하는 등 보안 관리에 안이했던 실태가 외부감사를 통해 적발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일각에선 이처럼 허술한 보안 관리 때문에 신도시 개발 등 중요 미공개 정보가 사내에서 공유될 수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보안 규정을 위반한 직원들은 ‘주의’ 처분만 받았다.

국민일보가 11일 확보한 2020년 ‘LH 감사결과 처분보고서’에 따르면 국무조정실은 지난해 6월 30일,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1월 21일 각각 LH에 대해 보안점검을 시행했고 개인정보가 포함된 서류 방치, 개인 서랍·캐비닛 미잠금, PC 전원 미차단 등 ‘퇴근 시간 이후 보안관리 부적정’ 사례로 총 11건을 적발해 LH에 통보했다.

LH 내부 보안업무 지침 등에 따르면 LH 임직원은 모든 공문서를 캐비닛 또는 파일박스 등 보안이 보장된 곳에 보관해야 하며 주요정책사업 검토서, 업무보고서, 회의자료 및 설계도서 등 각종 보안자료 역시 잠궈진 캐비닛이나 책상 서랍에 보관해야 한다. 개인정보 역시 기밀성이 충족될 수 있도록 보관·관리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LH에 대한 보안점검 결과 LH본사의 기획조정실, 경영관리실, 스마트도시계획처, 공공택지사업처 등 주요 부서에서도 보안 유지에 소홀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국무조정실이 지난해 단 하루 점검하고 적발한 보안관리 부적정 사례만 10건이었다.

국무조정실과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LH에 대해 보안점검을 진행하고 '보안관리 부적정'으로 적발한 사례가 소속 별로 정리된 표. 2020년 LH 감사결과 처분보고서 캡처

보안관리 부적정 통보를 받은 직원은 9명이었다. 기획조정실의 한 직원은 개인정보를 방치하고 컴퓨터 전원을 켜놓은 채 퇴근했다가 적발됐고, 공공택지사업처의 한 직원은 개인서랍을 잠그지 않은 채 퇴근한 것으로 드러났다. 스마트도시계획처의 한 직원도 개인정보를 방치한 사실이 지적됐고 대전충남지역본부의 한 직원은 업무용 캐비닛을 잠그지 않은 채 퇴근해 적발됐다.

기밀이 유지돼야 하는 공문서 및 개인정보 등이 무방비로 노출돼 정보 유출 우려가 발생했음에도 적발된 직원 전원이 받은 처분은 ‘주의’에 불과했다. LH는 ‘감사결과 위법 또는 부당하다고 인정되지만 징계에 이를 정도는 아닌 경미한 행위’에 대해서 주의 처분을 내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LH는 2018년 9월 과천지구 후보지 문건이 유출돼 논란이 불거지고 난 이후 전부서 보안교육 실시·보안규정 현실화 등 보안사고 방지 대책을 마련했지만 2020년에도 다시 허술한 보안 관리 실태가 외부 감사로 적발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LH의 안이한 보안의식이 ‘LH 임직원의 3기 신도시 땅 투기 의혹’ 등에서 드러나듯 미공개 내부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을 높인다고 봤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사회적 파급력을 고려한다면 LH는 어느 기관보다 보안이 중요한 공공기관”이라며 “외부 투기세력들이 항상 개발 정보를 빼내려고 혈안이 돼 있는데, 평소 보안이 허술하게 관리되면 그만큼 개발 정보가 쉽게 유출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안규정 위반 시 징계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준환 서울디지털대 부동산학부 교수는 “국책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기관에서 보안 문제가 발생하면 강하게 엄벌을 해야 하는데, 징계를 하는둥마는둥 넘어가니 지금과 같은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라며 “세부 규정을 강화하거나 형사처벌까지 검토하는 등 조직문화를 전부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정우진 안명진 기자 uz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