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용의 대지를 가르는 택배패스를 잘 봤다. 하지만 오늘은 그런 장면을 많이 못 보실 것이다”
10일 프로축구 K리그1 3라운드 FC 서울과의 홈경기 직전, 성남 FC 김남일(43) 감독은 기자단에게 장담 아닌 장담을 했다. 상대 주장 기성용(32)이 바로 직전 경기인 수원 FC(수원F)와의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한 반면 성남은 1무 1패로 다소 부진했기에 일견 지나치게 자신만만한 것 아닌가 싶은 발언이었다. 그러나 거짓말처럼 이날 경기에서 기성용은 눈에 띄게 부진했다. 김남일 감독의 전술적 노림수가 보기 좋게 적중한 경기였다.
앞선 라운드 서울과 수원F 사이 경기에서 기성용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전반까지만 해도 상대의 적극적인 압박에 서울의 빌드업이 다소 막히는 듯 싶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성용이 뿌리는 좌우 전환패스와 순식간에 공을 앞으로 이동시키는 전진패스가 서울 진영에서 빛을 발했다. 나상호의 골로 순식간에 이어진 기성용의 낮고 빠른 공중패스는 이날 경기의 하이라이트였다.
기성용을 향한 성남의 압박은 최전방에서부터 시작됐다. 공격수 박용지와 깜짝 기용된 2000년생 미드필더 강재우는 전방에 나서 기성용이 공을 편하게 잡지 못하도록 엄청난 활동량으로 앞선부터 압박했다. 중원에서도 김민혁과 이규성, 이종성이 기성용과 고루 맞붙었다. 이날 통계전문업체 비프로일레븐의 분석에 따르면 기성용이 상대와 그라운드 경합을 벌인 횟수는 13회로 서울 선수 중 가장 많았다.
빌드업의 시작점인 기성용이 공을 잃는 장면은 곧바로 실점 위기로 이어졌다. 전반 19분에는 이규성이 하프라인 위에서 공격 작업 중이던 기성용에게 돌진해 공을 빼앗은 뒤 박용지에게 패스를 찔러줘 단독 찬스를 만들었다. 36분에는 강재우가 패스 길을 찾던 기성용을 압박해 이태희와 박용지의 연달은 슈팅까지 이어냈다. 기성용은 압박을 피해 후방 깊숙이에서 빌드업을 시도했지만 이전만큼 원활하게 패스를 공급하지는 못했다.
서울의 빌드업이 그나마 살아난 건 후반 들어 김남일 감독이 전방의 박용지와 강재우를 빼고 득점을 위해 뮬리치와 홍시후를 투입하면서였다. 전방에서부터 성남 압박의 강도가 약해진 탓에 서울의 패스길도 전반에 비해 살아났다. 달리 말하자면 이 장면은 활동량 많은 선수를 선발로 맨 앞에 둘씩이나 기용한 김남일 감독의 선택이 어떤 목적이었는지를 설명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기성용은 직접적인 신체 경합에서는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했지만 마음먹은 대로 장기인 빌드업 플레이를 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었다. 여기에 수비 중 트래핑 과정에서 페널티킥 판정을 받아 실점의 빌미를 제공하는 불운까지 겹쳤다. 개막 이래 치른 3경기 중 가장 마음에 들지 않을 법한 활약이었다.
김남일 감독은 경기 뒤 인터뷰에서 “기성용을 많이 견제하자고 선수들에게 이야기했다”면서 이날 전술의 공략지점이 기성용이었음을 시인했다. 그는 “서울은 빌드업할 때 기성용 등 미드필드진이 전방으로 찌르는 킥이 강점이다. 이점을 생각해서 전방 압박을 한 게 승리의 원동력이었던 듯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강재우에 대해서는 “데뷔전인데도 굉장히 잘해줬다. 걱정한 부분이 없지 않았는데 제 역할을 다해줬다”면서 만족해했다.
전술가로서 이름 높은 서울의 박진섭 감독 역시 평가는 비슷했다. 그는 “오늘도 (기성용의) 패스나 경기운영은 좋았지만 공을 뺏길 때 다음 대처가 부족했다”면서 “항상 얘기를 했던 부분이지만 대처하는 게 조직적으로 불안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빌드업 작업이 원활하지 못한 데 대해서는 “(상대팀의 대응 방법을) 계속 계산해야 할 것 같다”면서 “다른 선수들도 있고 부수적인 변화를 줄 수도 있으니 고민해서 좋은 방법을 찾겠다”고 말했다.
성남=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