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원이 9일(현지시간) ‘조직권보호법’이라는 이름의 노동조합 강화법을 통과시켰다. 사회민주주의 정책을 대폭 수용했던 1930년 뉴딜 시절 이후 가장 중대한 노동권 증진 법안이 나왔다는 평가다.
뉴욕타임스(NYT), 악시오스 등에 따르면 미 민주당은 이날 하원에서 조직권보호법을 표결에 부쳐 225표 대(對) 206표로 통과시켰다. 공화당 의원 5명이 민주당 측에 합류해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전해졌다.
조직권보호법은 노조를 결성하려는 노동자들을 고용주의 해고나 보복으로부터 보호하고, 플랫폼 노동의 확대 등 노동환경 변화에 발맞춰 노조 가입 자격을 대폭 확대하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다. 법안이 상원의 벽을 넘을 경우 많게는 수천만명의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할 길이 열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조직권보호법에 따르면 노조를 결성하려는 노동자들을 보복하는 등 연방 노동법을 위반하는 고용주들에게는 건당 5만달러(약 5700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지금까지 미국 노동법에 노조 결성 방해 기업에 대한 벌칙 조항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지적했다. 노조를 탄압해도 처벌받지 않는 사회 분위기 속에 1950년대 30%대에 달했던 미국의 노조 가입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해 현재 11% 미만에 불과하다.
법안이 통과되면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었던 우버 운전기사 등 플랫폼 산업 노동자들의 처우도 크게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버와 리프트 등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의 운전기사들은 그간 회사와 독립적 계약을 맺는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최저임금·유급병가·고용보험 등 고용 노동자가 제공받는 사내 복지혜택에서 배제됐다.
조직권보호법은 플랫폼 노동자가 업무 중 플랫폼 업체의 지휘·통제에서 자유롭고, 실제 거래나 직업선택 과정에서 완전한 자유가 보장될 경우에만 개인사업자로 취급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들을 개인사업자로 분류하는 일 자체를 까다롭게 만들어 노조를 결성할 수 있는 노동자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다만 조직권보호법이 상원을 통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상원의 민주당과 공화당 의석이 50 대 50으로 동석인 가운데 민주당이 공화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에 의한 의사진행방해)’를 저지하고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최소 60표가 필요하다. 공화당에서 10명의 이탈자가 나와야 한다는 의미지만 현재 이 법에 동조하는 공화당 상원의원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려 “기업들을 고사시킬 법”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해 초에도 조직권보호법을 하원에서 통과시켰지만 당시 공화당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던 상원의 문턱을 넘는 데는 실패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