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급부상·LH사태에…발걸음 바빠진 野 잠룡들

입력 2021-03-10 16:36
유승민 전 의원이 지난달 25일 자신의 대선 선거 캠프인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희망22 사무실에서 나경원 전 의원을 만나고 있다. 연합뉴스

야권 잠룡들의 걸음이 바빠지고 있다. 대선을 1년 남짓 남겨둔 시점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급부상’까지 겹치며 더는 머뭇거릴 수 없다는 불안감이 이들을 압박한 데 따른 것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신도시 땅 투기 의혹 사태가 ‘부동산 민심’ 폭발의 기폭제가 된 상황에서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제주도지사, 홍준표 무소속 의원 등 야권 잠룡들은 10일 일제히 목소리를 냈다. 21대 총선 대패의 책임을 지고 두문불출하던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도 이날 정치 재개를 선언하며 전면에 나섰다.

야권 잠룡들은 공공 일변도의 정부·여당 부동산 정책이 LH 사태 근본 원인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유 전 의원은 ‘공공주도 개발’이 ‘공공 부패’를 낳았다고 LH 사태를 정리했다. ‘공공부패=독점+재량-책임’이라는 등식을 제시하며 “시장 경쟁이라는 햇볕을 쬐어 부패 곰팡이를 사라지게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10일 제주도청 탐라홀에서 제주제2공항 건설에 대한 제주도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원 지사도 시장의 역할을 강조했다. 원 지사는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격”이라며 공공과 시장이 서로 견제하고 경쟁해야 부패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홍 의원은 “무분별한 신도시 정책이 수도권 집중 현상만 심화하고 연결도로 신설과 전철 확장 등으로 예산만 늘어난다”며 신도시 정책을 아예 취소할 것을 요구했다.

홍준표 무소속 의원이 지난달 4일 국회 본회의에서 정치·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들이 한날한시 목소리를 낸 데는 4·7 재보궐선거 이후 야권 재편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작용했다. 선거 결과에 따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윤 전 총장이라는 외부 인사들이 야권 재편의 구심점으로 떠오를 수 있고, 이전에 자신의 영향력을 형성해 놓아야만 향후 대권 행보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이날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과 같이 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중요한 것은 윤 전 총장의 선택과 결심”이라며 윤 전 총장의 야권 진입 가능성을 열어두는 발언을 내놨다. 보궐선거 이후 예정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누구도 선뜻 당권을 잡겠다고 나서지 않는 현 상황도 이 같은 ‘야권 대 격변’을 지켜보겠다는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다.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가 지난해 4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선거상황실에서 총선 결과와 관련해 당대표직 사퇴 기자회견 후 상황실을 나서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황 전 대표가 “미력이지만 저부터 일어나겠다. 용기를 내겠다”며 정계 복귀를 알렸다. 황 전 대표는 “지금은 백의종군으로 홀로 외롭게 시작하지만 제 진심이 통해 국민과 함께 늑대를 내쫓을 수 있기를 바라고 바란다”며 “마지막 기회인 이번 4·7 재보선에서 모두 힘을 모아 정권의 폭정을 저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황 전 대표의 이 같은 정계 복귀를 바라보는 국민의힘 내 시각이 곱지만은 않다. 다가올 11월 대선 주자 선출에 앞서 선거와 전당대회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선거 패배의 책임이 있는 분이 자꾸 등장할수록 당이 변화를 위해 했던 노력이 희석되는 것 아닐까 하는 걱정이 있다”고 전했다.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