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학폭과 함께 흔적 감춘 ‘어우흥’ 명제

입력 2021-03-10 16:30
고개 숙인 김연경. 한국배구연맹 제공

올 시즌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지배했던 ‘어우흥(어차피 우승은 흥국생명)’이란 명제가 시즌 말미에 완전히 뒤집히고 있다. 레프트 이재영-세터 이다영 국가대표 쌍둥이 자매를 잃은 흥국생명은 더 이상 압도적인 전력을 과시하지 못한 채 정규리그 1위를 놓칠 위기에 처했다.

흥국생명은 9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6라운드 홈 경기에서 최하위 현대건설에 세트 스코어 1대 3(25-22 12-25 11-25 27-29)으로 역전패했다. 김연경이 20득점으로 분전했지만, 루소(24점)-정지윤(17점)-양효진(14점)-고예림(10점) 등이 모두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릴 정도로 고른 경기력을 선보인 현대건설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날 패배로 정규리그 종료까지 단 1경기만 남겨둔 흥국생명은 승점 56점(19승10패)을 획득, 1위를 유지했다. 다만 자력 우승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현재 흥국생명에 승점 1점 차 2위인 GS칼텍스는 2경기(12일 IBK기업은행전, 16일 KGC인삼공사전)를 남겨둔 상황. 흥국생명이 13일 KGC인삼공사전에서 승리하더라도 GS칼텍스가 남은 경기를 모두 이긴다면 1위를 확정짓는다. 두 경기 모두 3대 0 혹은 3대 1로 이길 경우 6점이 더해질 승점에서 흥국생명을 2점 앞서고, 두 경기 중 한 경기를 3대 2로 이길 경우엔 흥국생명과 승점 동률을 이룬 뒤 승리 경기 수(21승)에서 흥국생명을 1승 앞서 1위가 된다. 이미 3위를 차지한 IBK기업은행이 GS칼텍스전에 전력을 다 할 이유가 없는 상태기 때문에 GS칼텍스가 해당 경기에서 이길 가능성도 많다.

흥국생명은 올 시즌을 앞두고 배구 팬들의 큰 기대를 받았다. 에이스 이재영에 현대건설에서 세터 이다영을 자유계약선수(FA)로 영입해 ‘쌍둥이 듀오’를 구성했고,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세계 최고 레프트로 손꼽히는 김연경까지 한국으로 복귀시켜서다. 국가대표 공격진을 그대로 옮겨놓은 꼴이라 시즌 전부터 타 구단 감독들의 불만 섞인 투정을 듣기도 했다.

흥국생명은 개막전 포함 10연승으로 단독 선두를 유지하며 그런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정규리그 1위 자리가 멀어지는 건 한 순간이었다. 이재영-다영 쌍둥이 자매가 학교폭력 논란으로 무기한 출전 정지 처분을 받은 뒤 기존과 같은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실전에서 지속적으로 합을 맞추지 못한 세터와 공격진들의 호흡이 흔들렸고, 여기에 서브 리시브까지 흔들리면서 이기지 못하는 경기가 더 많아졌다. 여기에 GS칼텍스의 강력한 추격이 이어져, 흥국생명은 시즌 중후반까지 승점을 쌓아온 노력의 결실을 모두 잃을 위기에 처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