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끈끈해진 컬링 ‘팀 킴’, 올림픽 金 목표로 강릉서 땀방울

입력 2021-03-11 06:00
스킵 김은정(가운데)이 지난 9일 강원도 강릉의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강릉시청 컬링팀 공개훈련 중 김경애에게 스위핑 방향을 지시하고 있다.

“영미~! 헐 헐 조금만 더 더 더~!”

지난 9일 강원도 강릉의 강릉컬링센터엔 익숙한 고함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뒷발로 핵(발을 딛는 곳)을 강하게 차고 나간 선수들이 정신을 가다듬고 스톤을 잡은 손을 슬며시 놓으면, 스킵(주장) 김은정은 브룸(빗자루)으로 스위핑(빙판을 닦아내 스톤의 속도와 방향을 조절하는 일)하는 선수들을 향해 명료한 지시를 내렸다. 스톤은 이윽고 다른 색깔 스톤을 하우스(스톤을 밀어 넣어 점수를 내는 곳) 바깥으로 밀어내며 원하는 지점에 안착했다. ‘팀 킴(Team Kim)’이 지난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쓴 은메달 신화의 환희가 3년이 지난 이날 훈련에 구슬땀을 흘리는 선수들 위에 오버랩 됐다. 당시 ‘영미 돌풍’을 불러일으킨 주인공 김영미는 “샷(스톤을 투구하는 것)할 때는 ‘꼭 해내야지’란 생각을 하면 실수가 많아져 최대한 속도만 맞추자고 생각한다”며 “스위핑 할 땐 아무래도 앞에서 제 이름이 불리니까 자동적으로 (빙판을) 닦게 된다”며 웃었다.

의성여고 출신 4명(김은정·김영미·김선영·김경애)과 경기도 출신 김초희로 이뤄진 팀 킴은 경북 의성을 거점으로 활약해왔다. 김은정과 김영미가 결혼하는 등 올림픽 이후 여러 변화가 있었음에도 팀 킴은 지난해 11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선 우승을 차지하며 3년 만에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다. 하지만 ‘국가대표’ 선수들은 훈련할 장소도 제대로 찾지 못하는 나날을 보내야 했다. 지난해 말 경북체육회가 선수들과의 재계약을 포기했고, 대한컬링경기연맹이 회장 선거를 둘러싼 파행으로 국가대표 지원 업무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의성군 내 컬링센터와 헬스장 등 훈련 시설들도 문을 닫으면서 팀 킴은 지난 한 달여 동안 사비를 들여 개인 훈련만 해야 했다. 5~10㎞ 런닝을 하고 헬스장에서 개인 PT로 코어훈련을 하며, 화상 미팅을 통해 상태를 점검하는, 국가대표의 훈련이라곤 상상할 수 없는 방식이었다. 김영미는 “의성에선 운동할 곳이 마땅찮아 자차를 타고 왕복 1시간 반 거리의 헬스장을 찾아 개인당 사비 100만원 이상씩을 들여 PT를 받아야 했을 정도”라고 떠올렸다.

007작전: ‘올림픽 고향’ 강릉이 손을 내밀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컬링 경기가 열렸던 강릉컬링센터 전경.

그런 이들에게 손을 내민 건 강릉시청이었다. 팀 킴이 올림픽 은메달을 따낸 본고장인 강릉은 올림픽 이후 ‘컬링 열풍’의 특수를 맞았다. 코로나19 전까진 시에서 마련한 컬링 관광코스에 중국인 관광객들이 몰렸을 정도. 강릉시 내 21개 읍·면·동에 컬링 동호회 팀이 있어 동 대항전도 진행했을 정도로 컬링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도 컸다. 문제는 최상위 실업팀을 보유하고 있지 않아 체계적인 컬링 육성이 어려웠단 점이다. 컬링 실업팀 하나를 창단하려면 적어도 8억5000만원 이상의 재정 부담이 있지만, 강릉시는 올림픽 레거시인 강릉컬링센터를 활용하고 학교부를 창단해 컬링 붐을 조성하자는 목표로 국가대표임에도 소속팀이 없던 팀 킴에 접근했다.

영입은 지난달 15일 설 연휴 이후 본격화 됐다. 여러 지자체가 주저할 때 강릉시는 은퇴 후 후진 양성까지 장기적인 플랜을 제시하며 다가섰다. 강릉과 의성을 5~6회 왕복하며 계약을 성사시킨 손호성 강릉시체육회장은 “다른 시·군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어 ‘007 작전’처럼 스카우트를 했다”며 “선수들에겐 고향을 옮길 정도의 큰 일이었을 텐데, ‘강릉에서 영원한 컬링 레전드로 함께하자’는 뜻이 통한 것 같다”고 했다. 팀 킴과 오랜 시간 함께한 임명섭 코치도 “고향에서 예산 등 문제로 (계약이) 힘들다는 얘기를 들어 고민하던 차에 강릉에서 적극적으로 다가와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고 떠올렸다. 그렇게 14일 만에 계약이 완료됐고, 팀 킴은 올림픽을 개최한 시설을 갖춘 도시에서 2022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김은정은 “컬링장에 들어설 때마다 평창올림픽의 기억들이 나 더 열심히 하게 된다”며 “강릉은 저희에게 제 2의 고향”이라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생긴 끈끈함, 金 도전의 힘
김은정(오른쪽)과 김경애가 지난 9일 강원도 강릉의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강릉시청 컬링팀 공개훈련 중 함께 작전을 상의하고 있다.

평창의 영광도 잠시, 팀 킴은 오랜 시간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경북체육회 컬링팀 총감독이었던 김경두 전 컬링연맹 회장직무대행 일가에게 받은 부당한 처우를 폭로하면서다. 김 전 회장직무대행 일가는 컬링연맹과의 사적 불화에 따라 팀 킴이 2018-2019시즌 각종 대회에 불참하도록 압력을 넣고 이간질·폭언을 일삼았으며 사생활과 언론 인터뷰, 광고 출연 등을 통제했다. 또 각종 보조금·지원금 등을 개인 용도로 사용하는 등 팀 자체를 ‘사유화’한 혐의도 받았다. 수사 결과 이런 불법행위들이 사실로 드러나 김 전 회장직무대행이 징역 1년형을 받고 컬링연맹에서 영구제명되는 등 이들 일가는 죗값을 치렀지만, 팀 킴은 이 과정에서 큰 마음고생을 감당해야 했다.

그래도 이들이 낸 용기 덕에 한국 컬링은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김은정은 “완전히 개선됐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예전보다 정치적 색깔이나 사유화 문제가 없어지고 시·도 팀 간 교류를 통해 함께 발전해나갈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다”며 “앞으로도 ‘공정함’을 기본으로 컬링 발전만을 위해서 모두가 함께 화합해 나아가다보면 한국 컬링도 지금보다 더 선진적인 여건을 갖추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2019년 출산한) 아들에게도 컬링 체험 정도는 해보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하며 웃었다.

강릉시청으로 적을 옮긴 '팀킴' 선수들이 지난 9일 강원도 강릉의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공개 훈련이 끝난 뒤 인터뷰 중 화이팅 포즈를 취하고 있다.

힘든 시간을 함께 견뎌내면서 팀원들 간 끈끈함은 더 강해졌다. 김영미는 “팀원들이 (한국 컬링의 발전을 위하자는)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견딜 수 있었다”며 “서로 의지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커졌고, 서로를 더 잘 알게 돼 경기 때도 완전히 신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훈련 도중 선수들은 함께 작전을 고민하며 얼굴에 미소를 띠기도 하는 등 편안한 모습을 보였다. 김선영은 “은정 언니가 엄마, 영미 언니가 아빠처럼 팀원들을 잘 챙겨준다”고 말하자 김은정은 “오히려 선영이가 우리를 아빠처럼 묵묵히 보살펴준다”고 웃으며 화답했다.

이제 선수들은 다음달 30일 열릴 세계선수권 대회를 목표로 구슬땀을 흘려야 한다. 이 대회에서 6위 안에 들어야 베이징에서 금메달에 도전할 기회를 얻게 된다. 임명섭 코치는 “샷의 정교함을 높여 올림픽 때와 같은 높은 성공률을 기록할 수 있도록 하루 2타임씩 강도 높게 아이스 훈련을 반복할 것”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출전권을 획득한 뒤엔 국제대회에 참여하며 실전 경험을 쌓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저에게 컬링은 ‘인생에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이에요. 다가오는 세계선수권과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은 물론, 해외 유명 선수들처럼 30대 중반에도 전성기를 유지할 수 있는 기량을 갖춘 컬링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김은정).”

강릉=글·사진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