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일부 직원들의 투기 의혹에 대해 ‘공적 정보를 도둑질한 망국의 범죄’라고,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기대했을 법한 말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서 나왔다. 권력에 맞서며 정치적 자산을 쌓은 경우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고건 전 국무총리처럼 대통령의 권력에 의해 지지율을 부여받은 경우보다 생명력이 길다. 당분간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이 좀 더 상승할 것으로 본다.”
1년 앞으로 다가온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태풍의 눈이 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가파른 상승세에 대해 박성민 정치컨설팅그룹 ‘민’ 대표는 이렇게 평했다. 1991년 국내 첫 정치컨설팅 기업을 세워 30년 넘게 현장에서 선거를 치러온 그에게 윤석열 신드롬과 대선 구도, 그리고 대선 전초전인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의 판세에 대해 물었다.
-윤석열 전 총장이 예상보다 빨리 대권 가도에 뛰어들어 엄청난 파괴력을 보이고 있다. 내년 대선 구도를 어떻게 전망하나.
“1987년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한 이후 보수 동맹과 민주 동맹 양 진영이 총결집해 양자 대결로 대선이 치러진 건 두 번밖에 없었다. 2002년 노무현-이회창, 2012년 박근혜-문재인 때다. 이 두 번이 예외적인 경우였고 대개 어느 진영이라도 분열해 3자 구도, 4자 구도로 치러졌다. 가장 분열이 심했던 건 87년이었다. 민주 진영의 김대중-김영삼,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종필로 4자 구도가 됐다. 다음 대선은 가장 진영이 강하게 결집했던 2012년 선거보다 87년에 가까울 것이다.”
여야, 결집보다 해체되는 중… 내년 대선 다자 구도로 갈 가능성
-35년 만에 4자 구도가 될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인데, 왜 그렇게 보는가.
“현재 민주당의 지지율 1위가 이재명 지사지만 정권 핵심에서는 ‘이재명을 믿을 수 있을까’라는 인식이 있고, 윤 전 총장 입장에서는 제3지대에서 출마해야 보수, 중도, 민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국민의힘에도 중도 지향적인 원희룡 유승민 같은 정치인들이 있는 반면에 홍준표 황교안 김태호처럼 보수에 가까운 분들이 있다. 이 두 진영이 단일 정당이 되기보다 국민의힘이 깨지고 더불어민주당도 깨져서 4자 구도가 될 수 있다. 양 진영이 결집 대신 해체되고 있는 중이고, 그렇다면 다자 구도로 갈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는 점이다.”
-여권은 야권보다 분열 가능성이 적지만 이재명 지사와 친문으로 분열할 수 있다는 건가.
“야권이 윤석열의 제3지대와 국민의힘으로 갈라지면 여권에서도 ‘꼭 이재명이 아니라 우리도 갈라져도 승산이 있는 건 아닐까’라며 ‘4자 필승론’이 나올 수 있다. 87년에 노태우는 양김이 갈라졌으니 승리할 수 있다, 김대중은 영남이 PK(김영삼)와 TK(노태우)로 나뉘었으니 해볼 만하다, 김영삼은 보수가 노태우와 김종필로 분열해 이길 수 있다고 믿었다.”
누가 더 중도 지향적인가
-제3지대 정치 시도가 그동안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지 않나.
“이번 선거에서 주목하는 건 중도 지향적인 후보들이 강세를 보인다는 점이다. 시장 후보 경선에서 박영선과 박형준의 압승, 오세훈의 승리, 안철수의 안정적 우위 유지의 공통점은 중도지향성이다. 양극단의 진영 싸움에 너무 지쳤기 때문에 강성 이미지는 안 된다고 중도들이 강력하게 발언권을 행사하고 있다. 중도의 유동성이 어느 대선보다 강화된 시점이다. 즉 보수가 결집해 이길 수 있는 선거가 아니라 민주당의 지지층을 얼마나 잠식할 수 있느냐가 내년 대선의 키포인트 중 하나다. 그런 점에서 제3지대가 가능성 있다. 내년 대선은 축구로 말하면 3골을 먹고 4골 넣는, 서로 맞받아치며 수비보다 공격에 치중하는 혼전이 되리라 보고 있다.”
“철석연대? 윤석열은 안철수를 반면교사 삼아야”
-윤 전 총장의 앞으로의 행보는 어떤가. 여론조사에서는 국민의힘으로 가라는 의견이 많았고, 국민의당에서는 철석(안철수+윤석열)연대를 띄우고 있다.
“윤석열은 안철수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안철수의 경우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했을 때 지지율이 20%를 웃돌았지만 두 달 후 국민의당 창당 이후 8%까지 떨어졌다. 조직과 세력이 모인다고 지지율이 오르는 게 아니다. 윤 전 총장도 지금 기성 정치인들과 다르리라는 기대감이 있는데, 구시대 인물들과 손잡는 순간 기대감이 사라진다. 적어도 검찰총장 임기였던 7월까지 정치적 행보를 자제하면서 사안별로 메시지를 내는 경우 대중적 인기를 유지할 수 있지만, 섣부르게 구태 세력과 손잡으면 지지율이 급락할 것으로 본다.”
-먼저 큰 그림을 그려 주셨는데, 서울시장 선거는 대선 유력 후보 3명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나. 이낙연 전 대표는 상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이번 보궐선거에 사활을 걸었고, 이재명 지사는 이번 선거 결과에서는 자유로운 편일 텐데.
“이재명 지사에게는 서울시장 선거를 지는 게 유리하다. 문 대통령이나 586의 힘이 빠질 테고, 이낙연 전 대표나 정세균 총리에게는 충격이 있으니 이재명 대세론으로 갈 수 있다. 2011년 서울시장 선거 패배 이후 박근혜 비대위가 출범했던 것처럼 중요한 선거에서 여권이 패배했을 때 여권의 가장 유력한 차기 주자가 기세를 빨리 잡을 가능성이 있다. 여당이 0대 2로 진다면 자칫 친문-반문으로 분열되면서 비대위로 전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친문 진영의 ‘제3후보론’은 어떤가.
“이재명은 믿을 수 없고, 이낙연은 이길 것 같지 않다는 것이 친문 핵심의 생각이다. 586 제3후보론이 나오지만 제3후보는 쉽지 않다. 87년부터 늘 제일 유력한 당내 주자를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성공한 사례가 없다. 전두환 때도 측근들이 노태우는 안 된다고 했지만 결국 노태우에게 갔다. 2011년에도 이명박은 절대 박근혜는 아니라고 했지만 박근혜 대세론을 막지 못했다. 오히려 가장 강력한 차기 주자가 차별화를 하려고 할 때 현직 대통령이 잘 수용해준 경우 정권이 재창출됐다. 그 시점이 올 때 과연 문 대통령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가 남아 있다.”
-이낙연 전 대표는 어떤가.
“이 전 대표는 문재인정부의 총리가 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의 ‘호남대망론’으로 급부상했다. 안정감이 있지만 대중적인 폭발력이 있는 분은 아니다. 보궐선거에 당헌․당규를 바꿔 후보를 낸 게 이 전 대표의 결정이었는데, 지게 되면 원칙 없는 패배가 돼 아무래도 더 어려워질 것이다. 이재명 지사와 비교해 보면 이 지사가 부상하는 과정은 코로나 정국과 맞물려 있었다. 코로나라는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 기본소득, 재난지원금, 지역화폐 등 야전 사령관 같은 결단력과 추진력으로 어필했다. 그런데 그 리더십이 코로나 정국에는 통했지만 출구가 보일 때도 과연 이 지사에 대한 선호도가 계속 유지될 것이냐는 또 다른 문제일 수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사퇴 직후 단숨에 대권후보 지지율 1위를 거머쥐었다. 어떻게 보는가.
“타이밍도 그렇고 정치적인 묵직한 메시지를 내는 능력, 순발력도 상당하다. 무엇보다 지금 반(反)문재인, 반(反)민주당 유권자들이 정치적 의사를 나타낼 때 윤석열만큼 적당한 사람이 없다. 그러나 지금은 보수의 후보가 없어 보이지만 국민의힘이 경선을 통해 후보를 뽑으면 전체적인 지지율이 재조정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지켜봐야 한다.”
-보궐선거 이후 야권발 정계 개편이 확실시 되고 있는데.
“네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①안철수가 4번을 달고 서울시장이 되는 경우 ②안철수가 후보는 됐지만 본선에서 지는 경우 ③오세훈이 후보가 돼서 서울시장이 되는 경우 ④오세훈이 본선에서 지는 경우. 첫 번째 경우는 안 후보가 자기 힘으로 제1야당의 후보를 꺾고 또 본선에서 집권당 후보를 꺾은 것 아닌가. 그렇게 되면 본인 중심의 정계 개편을 주도하려 할 것이다. 마침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바깥에 나와 있기도 하고, 금태섭 전 의원 등도 참여하는 제3지대 중심의 개편이 될 것이다.”
-안철수 후보가 본선에서 지는 경우는?
“가장 복잡한 경우다. 안 후보가 중도 지향성 때문에 오 후보를 이겼는데, 본선에서 그 중도 지향성이 증명되지 못한 경우이기 때문에 안 후보도 국민의힘도 모두 한계를 보인 선거가 된다. 야권은 전체적으로 지리멸렬해질 것이다. 국민의힘은 홍준표 의원이 복당이 될 것이고, 홍 의원식으로 말하면 ‘적장자’들이 중심이 되는 정당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 혹은 위기감이 크다면 세대 교체나 강도가 센 혁신을 할 수도 있겠다.”
-오세훈 후보로 단일화가 됐다가 지는 경우는 국민의힘의 존립이 위태로워지지 않을까.
“해체 요구가 많을 거다. 차라리 안철수가 나갔으면 이기지 않았겠느냐는 상당한 정도의 후폭풍이 있고, 안 후보는 이미 경선에서 졌기 때문에 윤 전 총장 쪽으로 힘이 쏠리면서 ‘윤석열 대망론’ ‘대안부재론’이 나올 수 있다. 오 후보가 당선이 되는 세 번째 경우라면 국민의힘이 지난 몇 년 간 연전연패하면서 잃었던 자신감을 회복하고, 야권 재편의 플랫폼이 될 것이다.”
-오세훈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후보자등록 마감일인 오는 19일 이전 단일화한다고 합의했지만 실패하거나 늦어질 수 있을 텐데.
“단일화를 하라는 압력을 견딜 수 있겠나. 늦어지면 효과가 없다. 투표용지 인쇄하기 전까지 끌면 시너지도 안 나온다. 김종인 위원장이 일주일이면 된다고 계속 얘기하지 않았나.”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의 합당이나 안철수 후보가 국민의힘으로 입당할 가능성은?
“두 가지 때문에 가능성이 더 낮아졌다. 국민의힘이 혁신을 했거나 이미지가 개선됐다고 확인된 게 없다. 지지율이 20%에서 올라가지 않는다. 더 중요한 건 안 후보가 국민의힘과 합당하면 윤석열 전 총장이 합류하기 쉽지 않다.”
-결승 파트너를 기다리고 있는 박영선 후보의 강점과 약점은 어떤 것인가.
“아주 친문도 아니고, 장관을 지내면서 국정을 겪어봤고, 서울시장 선거도 겪어봤다. 특히 전 시장이 성추문으로 물러난 데다 광역단체 중에 여성단체장이 없기 때문에 기회 요인이 많다. 리스크는 이 정권의, 민주당의 후보라는 점이다.”
-지난 총선에서 통하지 않았던 현 정부에 대한 심판론이 이번에는 통하리라 보는 건가.
“대선을 1년 앞두고 있어서 기본적으로 정권에 대한 심판론이 기류에 흐른다. LH 사건과 윤석열 파동 때문에 여당에는 썩 유리한 구도가 아니다. LH 사건은 20대부터 70대 이상까지 모두 분노하는 사안이다.”
-부산시장 보궐선거는 정부와 여당이 가덕도 신공항을 밀어붙였지만 여론조사에서 기대만큼 전세 역전에 도움이 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은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참패를 당할 때도 지켜낸 곳이다. 여권으로선 참 힘든 지역이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처음으로 부울경 광역단체장 세 군데를 다 민주당에 줬는데 공교롭게도 부산․울산시장, 경남지사가 다 문제가 됐다. 가덕도보다 탈원전을 비롯한 이 정부의 정책 때문에 산업적인 타격을 받았다고 보는 시각이 있기 때문에 부산은 지난 총선보다 어려우면 어렵지 쉽지 않다.”
-서울시장에 당선된 후보가 대선으로 직행할 가능성은 없나.
“없다고 본다. 본선에서 안철수나 오세훈, 박영선 모두 계속 이 질문을 받을 것이고, 그럼 국민 앞에 수십 번 더 약속을 해야 한다. 대선 후보가 뽑혔는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겨 불려 나오는 경우라면 모르겠지만, 본인이 나설 명분이 있겠는가.”
다음 대선의 시대정신은 통합과 미래
-다음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대중은 어떤 대통령을 원한다고 보나.
“대통령의 시대는 끝났다고 본다. 대통령은 메시아나 영웅, 지도자가 아니다. 전체적인 추세가 그렇다. 2000년대 이후 세계화와 기술 혁신이 만들어 낸 양극화가 가속화됐고, 그 양극화로 인한 분노가 포퓰리즘과 진영 논리, 음모론, 가짜 뉴스를 만들어냈다.
한국은 조국 내전 이후 대화가 단절되고 네트워크가 깨지고, 정치를 화제로 삼는 것을 피하게 됐다. 이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조금 더 통합적으로 움직이게 될 것이다. 이 움직임을 밀어주는 세력이 중도층, 즉 ‘묻지마 1번’ ‘묻지마 2번’을 뺀 스윙보터(부동층)이다. 또 하나는 미래다. 세계가 우주 이주를 말하는데 우리는 100년 전 토착왜구와 빨갱이 얘기를 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통찰도 없고 현재의 문제를 풀 능력도 없으니 과거만 가지고 싸우는 거다.”
지도자로서 대통령의 시대는 끝났다
-이전 저서에 썼던 ‘지도자의 크기가 나라의 크기다’라는 말이 와 닿았다.
“예전보다 지도자의 위상과 역할이 줄어들고 있다. 복잡한 현실의 현안을 지도자의 판단으로 풀어내기가 쉽지 않아지기 때문이다. 사자 한 마리가 이끄는 양떼가 양 한 마리가 이끄는 사자 떼를 이긴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지도자가 중요하다는 얘기지만, 이제 그런 담론은 끝난 것 아닌가 한다. 대통령제 국가의 최대 리스크가 대통령일 수 있다. 우리가 후진국이던 시절처럼 대통령이 다 끌고 가리라 기대하지 않지 않나. 대통령에 대한 기대치도 낮아졌고, 내각제 개헌을 생각해 봐야 되는 것 아닌가 한다.”
-보궐선거 이후에 개헌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고 보는 건가.
“대선 후 2024년 총선을 앞뒀을 때 대통령제가 가장 좋은 제도인지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지금은 범여권이 190석이어서 야당이 정권을 잡아도 끌고 갈 수가 없다. 지금의 야권에서 협치의 새로운 모델로 개헌 논의가 불거질 수도 있다.”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의 남은 변수는?
“우리가 알고 있는 변수는 이미 다 반영이 돼 있다. 앞으로 3주 동안 아직 벌어지지 않은 변수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고 있는 게 이슈가 될 것이고, 선거에서 이슈보다 중요한 건 그 이슈를 다루는 태도다.”
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hskw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