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 깬 차지연, 누가 그를 막을 수 있을까[인터뷰]

입력 2021-03-10 05:00
연극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리를 맡은 배우 차지연의 모습. 페이지원 제공

최근 종연한 연극 ‘아마데우스’는 남성 음악가 살리에리의 이야기다. 하지만 무대에 오른 건 여배우 차지연이었다. 모차르트를 향한 살리에리의 질투와, 삶에 대한 번뇌는 차지연의 몸짓과 표정과 대사를 통해 관객에게 전해졌다. 차지연은 2006년 뮤지컬 ‘라이온 킹’으로 데뷔한 후 지금까지 한 번도 정체한 적 없다. 뮤지컬계 정상 자리를 굳건히 지키면서도 1인극 ‘그라운디드’ 등 자신의 한계에 도전했다.

그래서인지 차지연 앞에는 늘 ‘도전’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아마데우스처럼 남녀 성별을 반전하는 젠더 프리 캐스팅 문화는 차지연이 판을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서 출연한 ‘더 데빌’ ‘광화문연가’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서도 그는 남성 캐릭터를 맡았다. 무대에서 차지연을 가둘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는 작품의 메시지를 충실히 전달하고자 하는 한 명의 배우가 되고 싶었다. 차지연은 현재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이 극장에 진출하면서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냈고, 4월에는 SBS ‘모범택시’로 10년 만에 브라운관으로 나선다. 차지연을 9일 화상으로 만나 연극, 뮤지컬, 영화, 방송을 넘나들며 활동하는 비결을 물었다.

배우 차지연. 씨제스 제공

배우 차지연 인터뷰 일문일답
Q. 젠더 프리 캐스팅 공연에 많이 출연했다.
“여배우의 힘, 여자로서 뿜어낼 수 있는 매력을 적절하게 발산하고 싶어요. 젠더 프리 캐스팅은 그런 조화로움을 부각할 기회였죠. 하지만 늘 선을 지키려고 해요. 매번 신중하고요. 여배우가 남성의 역할을 맡아 무대에 섰을 때, 관객이 거리감을 느끼진 않을까 하는 고민도 오래 하죠.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는 거예요. 공감을 불러올 수 있고, 관객을 설득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Q. 고민 끝에 살리에리 역을 수락한 이유는 뭔가.
“저도 살리에리처럼 스스로를 못난이로 여겼던 세월이 꽤 길었어요. 그래서 ‘내가 이래서 살리에리를 만나게 된 건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죠. 오랫동안 배우 생활을 했지만 자신 있게 준비한 작품이 없어요. 매번 스트레스를 받았죠. 그런 제 자신을 보는데 살리에리가 겹치는 거예요. 살다 보면 누구나 그렇잖아요. 자신이 초라해 보이고 남과 비교하게 되고…. 저도 그랬어요. 인간의 나약함은 똑같다는 생각이 든 거죠.”

Q. 도전하고 싶은 젠더 프리 역할이 있나.
“뮤지컬 ‘드라큘라’ 주인공을 배우 김준수씨와 함께 해보고 싶어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도 도전해 보고 싶고요.”

Q. 내로라하는 작품에 많이 출연했는데, 실제 차지연과 가장 닮은 캐릭터는.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프란체스카가 비슷한 것 같아요. 부족한 면을 끊임없이 채워야 하는 숙명을 갖고 있다고 할까요. 또 매 순간 소심해지는 면은 살리에리와 닮은 것 같아요.”

Q. SBS ‘여인의 향기’ 이후 10년 만에 드라마에 출연하는 소감은.
“배울 것 투성이에요(웃음). 무대와는 환경이 아주 다르니까요. 공연의 경우 연습 기간이 정해져 있잖아요. 계속 연습하면서 무대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있는데 드라마는 현장성이 중요하더라고요. 10년 전에는 드라마 촬영 현장을 견학하는 느낌이었어요. 연예인 보는 게 신기하고 그랬죠. 그런 건 마찬가지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달라진 점은 제 역할이 커져서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연기하는 배우들과 호흡을 잘 맞추려고 노력했다는 점이에요. 10년 전에는 사실 카메오 수준이었거든요. 지금은 작품에 누가 되면 안 되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해요.”

Q. 여러 역할에 두루 캐스팅되는 비결은 무엇인가.
“한순간도 열심히 하지 않은 적 없어요. 시대를 반영하면서 촌스럽지 않도록, 작품에 예의를 지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죠. 저를 드러내기보다는 작품이 돋보이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 실험적인 작품에 많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정말 끊임없이 도전한다. 이유는 뭔가.
“답답해서요. 2006년 데뷔 이후 지금까지 주로 뮤지컬을 해왔어요. 그렇다 보니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데 한계가 있었어요. 그래서 비슷한 캐릭터를 연달아서 하지 않는 게 철칙이 됐어요. 그리고 여기까지 온 거죠.”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