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의 의약품 평가·감독기구인 유럽의약품청(EMA) 고위인사가 러시아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을 ‘러시안 룰렛’에 비교하는 등 부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러시아는 이에 반발하며 EMA의 사과를 요구했다.
9일(현지시간) 리아노보스티와 AFP통신 등에 따르면 크리스타 비르투머-호흐 EMA 이사회 의장은 전날 오스트리아 OFR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오스트리아가 러시아의 ‘스푸트니크 V’ 백신을 자체적으로 승인할 가능성이 아주 낮다고 밝혔다.
호흐는 “헝가리는 자체적으로 스푸트니크 V에 긴급사용 승인을 내렸지만 우리(오스트리아)의 경우에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확률로 얘기하자면 러시안룰렛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백신 접종을 받은 사람들의 안전성에 관한 충분한 자료가 아직 없다”면서 “오스트리아가 (러시아 백신을) 승인하지 말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고 덧붙였다.
EMA 책임자의 ‘러시안룰렛 발언’이 알려지자 러시아는 즉각 반발했다. 백신 연구를 총괄한 개발자 측은 “스푸트니크 V를 승인한 EU 국가에 대해 부정적 논평을 한 호흐에게 공개적 사과를 요구한다”면서 “그녀의 논평은 현재 진행 중인 EMA의 (스푸트니크 V) 심사 과정에 대한 정치적 개입 가능성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EMA가 다른 백신에 대해 유사한 식으로 논평한 적이 없었다”면서 “EMA는 스푸트니크 V를 승인한 46개국 감독기관의 신뢰를 훼손할 권리가 없다”고 말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도 이날 기자들에게 “(호흐 의장의) 유감스러운 발언은 적절치 않은 것”이라면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나타나는 스푸트니크 V 백신 수요는 이 백신의 필요성과 인기를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반박에 호흐는 9일 기자회견을 열고 러시아 백신을 거듭 공격했다. 그는 “EMA의 스푸트니크 V 백신 승인 전망과 관련해 러시아 측과의 소통 과정이 어렵게 진행되고 있다”면서 “이 백신의 EU 진출 시점을 예측하기는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현재 스푸트니크 V 백신의 사용을 승인한 국가는 러시아를 포함해 46개국이다. 다만 미국과 EU, 일본 등 주요국들은 백신의 안전성과 신뢰도를 문제삼아 승인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