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반군부 시위가 한창이던 지난달 말 미얀마 군부에 자국이 투자한 송유관의 안전을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고 미얀마 현지 매체 이라와디가 보도했다. 중국은 반중 여론 억제를 위한 언론 통제도 요구했다.
8일(현지시간) 이라와디가 입수한 기밀문서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달 말 미얀마 외교부·내무부 관리들과 긴급회의를 열고 이같은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문서를 보면 바이텐 중국 외교부 대외안전사무국장은 미얀마 내에서 연일 높아지고 있는 반중 여론과 관련해 중국 국영 석유회사인 중국석유천연가스공사(CNPC)가 투자한 송유관의 안전 보장을 요청했다.
이 송유관은 벵골만에 위치한 서부 리카인주 짜욱퓨항에서 시작해 마궤주와 만달레이주, 북주 샨주 등을 거쳐 중국 윈난성으로 연결된다. 총 길이만 800km로 연간 석유 2200만t과 천연가스 120억㎥를 수송할 수 있는 거대 인프라다.
당시 바이 국장은 “석유관과 가스관이 파손될 경우 양국 모두 막대한 손해를 입을 수 있다”면서 “외국인 투자와 관련한 신뢰도도 저하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얀마에게도 국가적으로 중요성이 큰 사업인 만큼 보안이 강화돼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이다.
중국이 미얀마 군부에 노골적인 언론 통제를 요구한 사실도 드러났다. 미얀마 내 반중여론을 억제하기 위해 일부 언론에 압력을 가하라고 압박한 것이다.
바이 국장은 “송유관은 미얀마의 사회·경제적 발전 측면에서 큰 역할을 맡고 있다“면서 “미얀마 정권이 중국에 대해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기사를 쓰도록 언론을 통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송유관에 대한 비판을 허용해서는 안된다”면서 “관련 기관이 이 사업에 대한 가짜뉴스를 통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얀마 군부가 현지 언론사 5곳의 면허를 취소한 것이 중국의 요구에 따른 게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이날 군부는 국영 방송사 MRTV를 통해 “이 언론사들은 더 이상 방송이나 신문 발행, 기사 작성, 미디어 플랫폼 등 기타 통신수단을 이용한 보도를 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사실상 문을 닫게 된 미지마와 DVB, 키트티트 미디어, 미얀마 나우, 7데이뉴스는 이번 사태를 가장 적극적으로 보도한 곳들이다.
미얀마에서는 소셜미디어(SNS)를 중심으로 반중 여론이 급속도로 고조되고 있다.
미얀마 시민들은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미얀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쿠데타와 유혈진압)이 우리만의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송유관을 폭파하는 것 역시 우리만의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라와디에 따르면 이같은 메세지는 이미 100만명 이상이 미얀마어와 영어, 중국어로 공유했다.
중국을 향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미얀마 군부 규탄 성명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라고도 압박했다. 수천명의 누리꾼들은 중국 외교부 트위터 계정(@MFA_China)을 겨냥해 “미얀마인들은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면서 “중국이 또다시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