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의혹’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1심 선고가 내년 대선 무렵이 돼야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양 전 대법원장의 재판은 햇수로 2년을 넘겼는데, 아직도 수십 명의 증인신문 절차가 남았다. 여기에 재판부가 전원 교체되는 변수까지 겹치면서 심리는 더욱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9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35-1부(부장판사 이종민)는 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의 1심 속행 공판을 다음 달 7일 재개한다. 지난달 법원 정기 인사로 재판부가 전원 교체되면서 멈췄던 공판이 2개월 만에 다시 열리는 것이다. 재판부는 사건기록 파악 등을 이유로 이달 예정됐던 9번의 공판기일을 미뤘던 것으로 전해졌다.
양 전 대법원장 재판에는 현재까지 90여명의 증인이 법정에 나왔고 향후 70여명의 증인신문이 남았다. 증인 숫자를 기준으로 보면 2019년 2월 재판이 시작된 지 2년이 지나서야 반환점을 돈 셈이다. 당초 신문이 예정된 증인은 200명이 넘었으나 양 전 대법원장 측이 일부 증인의 검찰 조서를 증거로 채택하는 데 동의해 인원이 줄었다. 검찰 관계자는 “현재 심리 속도라면 내년 상반기 정도가 돼야 선고가 그나마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최근 재판부가 전원 교체되면서 심리가 더욱 장기화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달 법원 정기인사에서 기존 재판장이었던 박남천 부장판사는 서울동부지법으로 전보됐다. 배석인 심판·이원식 판사도 각각 서울동부지법과 전주지법 남원지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사실상 재판을 새로 시작하게 된 셈”이라고 말했다.
재판부 변경에 따른 ‘공판 갱신 절차’에는 최소 한 달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가 바뀔 경우 앞선 공판에서 나온 진술, 제출된 증거 등을 재확인하는 절차다. 그간 이뤄진 증인신문과 증거 등의 분량이 방대해 갱신 절차에만 수차례의 기일이 소요될 가능성이 높다. 향후 재판 진행 방향에 대한 검찰과 양 전 대법원장 측 의견이 충돌하면 이 기간이 더 길어질 수 있다.
양 전 대법원장과 별도로 형사36부(부장판사 윤종섭)에서 재판 중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1심 선고 시기도 변수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이 위로는 양 전 대법원장에게 보고하고, 아래로는 법원행정처 심의관 등에게 지시를 하달하면서 ‘행동대장’ 역할을 했다고 본다. 교체된 재판부가 사건의 논리적 순서를 감안해 임 전 차장 재판 결과를 기다린다면 양 전 대법원장 선고는 더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 임 전 차장 사건에 출석 예정인 증인은 1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법농단 의혹 수사 때부터 참여했던 검사들이 다수 전보되거나 중복 업무를 맡게 된 상황도 공소유지에 어려움을 주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공판 대응에 점점 힘들어지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