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범에게 그릇 휘두른 게 범죄?…헌재 “정당방위”

입력 2021-03-09 09:33 수정 2021-03-09 10:26
국민일보DB

성추행을 당하자 사기그릇을 휘둘러 저항한 여성에게 검찰이 내린 기소유예 처분을 헌법재판소가 취소했다. 정당방위 여부를 판단하지 않은 자의적 검찰권 행사라고 판단한 것이다.

헌재는 성추행 피해자 A씨가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제기한 헌법소원 심판에서 A씨의 청구를 인용 결정했다고 9일 밝혔다.

A씨는 2018년 10월 자신을 성추행한 B씨에게 사기그릇을 휘둘러 귀 부위를 다치게 한 혐의(상해)로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이후 B씨는 강제추행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

기소유예는 범죄 혐의는 인정하지만 피해 정도 등을 참작해 피의자를 재판에 넘기지 않는 처분이다.

이후 A씨는 강제추행의 방어 차원이었다며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해 달라고 헌법소원을 청구했고 헌재는 A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헌재는 당시 A씨가 물을 담기 위해 사기그릇을 들고 있어 다른 방법으로 성추행에 저항하기 어렵다고 봤다. 또 폐쇄된 고시원 주방에서 단둘이 있었고 B씨가 공포심을 일으키는 행동을 반복했다는 점에서 A씨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B씨는 밤 10시가 지난 무렵 A씨를 뒤따라가 욕실 전원을 끄는 등 공포심을 야기하는 행위를 반복하고 나가지 못하게 한 다음 기습적으로 강제추행을 했다”며 “사건 당일 정황, 강제추행이 이뤄진 장소의 폐쇄성 등을 고려하면 A씨의 방어행위는 불안스러운 상태에서 공포 등으로 인한 것으로 볼 여지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검찰로서는 B씨가 입은 피해가 상해에 해당하는지 명확히 한 다음 당시 A씨가 놓인 상황 등을 면밀히 따져 형법상 정당방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닌지 살폈어야 한다”며 “이에 관한 충분한 조사 없이 기소유예 처분을 한 것은 중대한 수사미진에 따른 자의적 검찰권 행사”라고 덧붙였다.

김아현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