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배송 ‘악몽’… 고강도 심야노동에 쿠팡 노동자 또 사망

입력 2021-03-08 17:34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쿠팡 심야·새벽 배송 담당하던 이모씨 사망 관련 기자회견에서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쿠팡 택배 노동자 사망사고가 또 발생했다. 쿠팡은 새벽배송으로 고속 성장하며 국내 이커머스 업계를 선도하고 있으나 ‘시간에 쫓기는 고강도 업무’가 노동자 사망사고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어내지 못하고 있다. 쿠팡은 사망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일관되게 ‘과로 환경이 아니었다’고 해명해 왔다.

8일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대책위)와 경찰에 따르면 쿠팡 송파 1캠프에서 심야·새벽 배송을 담당하던 이모(48)씨가 지난 6일 낮 12시23분쯤 서울 송파구의 한 고시원 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대책위는 이날 쿠팡 본사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고인은 지난해 쿠팡에 계약직으로 입사해 평소 밤 9시부터 아침 7시까지 매일 10시간씩 주 5일을 일했던 것으로 확인됐다”며 “부검의는 (고인에게서) 뇌출혈이 발생했으며 심장 쪽에 문제가 있었다는 1차 소견을 밝혔다. 고인이 평소 지병이 없었던 만큼 명백한 과로사”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3월 12일 배송 중이던 쿠팡 소속 택배 노동자(47)가 숨진 이후 1년 동안 쿠팡에서 물류센터·택배 업무를 하던 20대부터 50대까지 6명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10월 숨진 장덕준(27)씨 사건은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업재해로 인정받았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열린 쿠팡 심야·새벽 배송 담당하던 이모씨 사망 관련 기자회견에서 고인을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

쿠팡 측은 노동자 사망사고에 대해 ‘과로가 아니다’는 입장을 거듭해 왔다. 쿠팡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고인과 유가족분들께 깊은 애도와 위로를 표한다”면서도 “지난 12주간 고인의 근무일수는 주당 평균 약 4일이었으며 근무시간은 약 40시간이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을 위한 사회적합의기구가 권고한 주당 60시간 근무에 비해서 낮은 수준”이라고 했다.

하지만 사망사고의 핵심은 근로시간이라는 양적인 문제가 아니라 업무 강도인 질적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년 동안 쿠팡에서만 6차례 사망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은 ‘불의의 사고’가 아니라 기업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발생한 ‘산재’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숨진 이씨처럼 오후 9시부터 이튿날 오전 7시까지 이어지는 일상적인 심야 근무는 ‘살인적 노동 강도’를 동반하게 마련이다. 오래 일할 만한 업무가 아니다 보니 쿠팡은 늘 택배기사 인력난에 시달린다. 하지만 고강도 근무를 감당할 만한 적정 인력이 확보되지 않고, 개개인에게 적절한 근무 시간이 보장되지 않고, 정당한 휴식시간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이 악순환은 끊어내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대책위는 고강도 장시간 심야노동에 따른 예고된 과로사라고 주장했다. 대책위 관계자는 “(산재를 인정받은) 고 장덕준씨 사망 이후 과로사 재발 방지대책을 쿠팡에 요구했으나 사실상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물량을 처리하도록 강요받는 점, 무급휴게시간에도 사실상 쉴 수 없는 구조, 상대평가제도를 이용해 무한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쿠팡에서 발생한 사망사고가 원인 규명 결과 업무에 따른 거라면 당연히 중대재해로 지정해서 그에 따른 처벌을 해야 한다”며 “사람 목숨을 담보로 경쟁력과 효율성을 만들면 안 된다는 기업 윤리 또한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서울 서초구의 한 주차장에 주차된 쿠팡 배송 차량. 연합뉴스

쿠팡에 노동자 수가 많다 보니 생기는 문제라는 견해도 있다.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소속 근로자 수가 많은 기업일수록 사망 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산술적으로 높다는 이유에서다. 때문에 사망 사고의 원인을 엄밀하게 따져보고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사안을 파악하는 게 1차적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며 “원인 규명에 따라 효과적으로 안전을 제고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하고 관리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커머스 업계에서는 쿠팡의 대처에 의아함과 우려를 표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상장사가 된다면 사회적 책임과 주주 의견 등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더 많아지는데 노동자 문제에 대한 쿠팡의 대처는 늘 의아스럽다”며 “상장 이후에도 문제가 없으려면 노동자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영 문수정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