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세계 각국이 코로나19 백신 접종자를 대상으로 ‘백신여권’을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봉쇄가 장기화하면서 경제가 악화되자 특히 관광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일부 국가들이 백신여권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 등은 유럽 일부 국가들이 이미 백신 접종 증명서 등을 발급하고 있는 가운데 그리스와 스페인 등이 유럽연합(EU)에 디지털 백신여권을 도입해 출입국 제한을 낮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스라엘은 최근 디지털 백신 접종 증명서인 ‘그린 패스’를 발급하고 이를 소지한 시민들에게 체육관과 음식점 등의 출입을 허가했다. 이스라엘은 여기에 더해 그리스와 사이프러스 등 EU 국가와 사전에 협의해 격리를 면제하는 ‘트래블 버블’을 시험적으로 실시키로 합의했다.
영국도 백신 접종 증명서 발급을 검토하고 있다. 사이프러스는 오는 5월부터 백신을 접종한 영국민은 자유롭게 입국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는 “백신을 접종한 사람은 완전히 자유롭게 다닐 수 있어야 한다”며 목소리를 보탰다.
WP는 “EU 집행위원회가 회원국 내부는 물론 역외 국가까지 백신여권을 도입해 왕래를 자유롭게 하는 방안을 이번 달 제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아시아 국가들도 백신 증명서 발급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왕이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다른 나라들과 코로나19 백신 접종의 상호 인증을 논의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
태국도 백신 접종 증명서를 소지하고 입국하는 방문자들에게 2주 격리를 면제해주고 일부 제한 조치를 완화해주면서 자국민도 상대 국가에서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대만 자유시보 등은 코로나19 방역 모범국으로 꼽히는 대만이 남태평양의 섬나라 팔라우와 ‘트래블 버블’을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트래블 버블’은 코로나19 방역 모범국 간에 일종의 안전막을 형성해 자가격리를 면제하고 자유로운 여행을 허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좡런샹 질병관제센터(CDC) 대변인은 “트래블 버블 가동과 연관된 세부적 논의는 이르면 2~3일 진행될 예정”이라면서 “조만간 그 결과를 발표할 것”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선 백신 접종 증명서를 도입할 경우 백신 접종을 하지 않은 시민을 차별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소수 인종이나 임신부, 또는 백신 접종 후순위인 젊은층,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층이 불이익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백신여권 도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지만 백신 접종률이 낮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접종한 여행객을 우대하는 것은 당장 추진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백신 접종율이 낮은 프랑스도 이와 비슷한 입장이다.
백신을 접종하고 증상이 없더라도 바이러스를 퍼뜨릴 수 있다는 학계의 지적도 있다. 디지털 백신여권을 제작하면 여행객의 동선을 파악해 사생활이 침해될 수 있다는 문제점도 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