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첫 동남아계 공주 ‘라야’, 정체성 논란

입력 2021-03-08 13:38 수정 2021-03-08 13:44
영화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스틸.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동남아시아계 공주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디즈니의 신작 애니메이션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이 정체성 논란에 휩싸였다. 동남아시아의 다양한 문화집단을 한 영화에 녹이려다 보니 여러 요소를 짜깁기한 모호한 상황이 연출됐다는 것이다.

영국 BBC는 7일(현지시간) “영화가 해당 지역 내 서로 다른 문화에서 특정 부분을 골라 하나로 합쳐 놓았다는 불만이 온라인에서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은 디즈니 최초로 동남아시아 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작품이다. ‘겨울왕국’과 ‘모아나’ 제작진이 참여했다.

주인공 라야가 디즈니의 13번째 공주이자 첫 동남아시아계 공주라는 점에서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디즈니는 11개국에 이르는 동남아시아권역의 대표 인물을 만들려고 공을 들였다. 영화 곳곳에는 동남아시아 특유의 문화 요소들을 찾아볼 수 있다.

라야가 쓴 모자는 필리핀 전통모자 ‘살라콧’을 연상시킨다. 그가 타고 다니는 동물의 이름 ‘툭툭’은 필리핀 태국 캄보디아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삼륜차량을 떠올리게 한다. 라야의 전투 스타일은 인도네시아 등의 전통무예 ‘실랏’에서 영감을 받았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지금까지 소외됐던 동남아시아 문화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은 충분한 의의를 지닌다. 다만 각 집단의 특색 짙은 문화를 한 작품에 담아내는 게 무리라는 비판이 나온다. 국가와 지역별로 뚜렷한 차이를 갖는 지역을 동남아시아권역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묶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영화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스틸.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데이비드 림 말레이시아 오픈유니버시티 부교수는 “일례로 프랑스 식민지였던 베트남과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의 문화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유럽 주민들이 자신을 ‘유럽인’이라는 하나의 범주 안에서 인식하는 것과 달리 동남아시아 주민들은 자신을 ‘동남아시아인’으로 보지 않는다”면서 “동남아시아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해 현지 주민들 의견도 일치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영화 제작사 측은 단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영감을 받은 것뿐이지 하나의 국가나 문화에 초점을 맞출 의도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동 각본가인 퀴 응우옌은 “아서왕 전설이 유럽 각지의 설화에서 비롯된 것과 비슷하다고 본다. 독창적 이야기를 만들어내되, DNA는 실존하는 지역에서 비롯되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지난 4일 개봉한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은 어린이는 물론 가족 관람객 발길을 붙잡고 있다. 지금까지 12만7004명의 관객을 모았다. 현재 박스오피스 2위다.

이주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