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선거제 개편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중국의 국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는 오는 11일 폐막일에 ‘홍콩 특별행정구 선거제도 완비에 관한 결정안’을 표결에 부쳐 처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홍콩 국가보안법을 밀어붙였던 것과 같은 프로세스다.
중국 지도부는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전인대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무대 삼아 홍콩 선거제 개편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왕이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7일 베이징에서 열린 화상 기자회견에서 “홍콩 선거 제도 정비는 홍콩의 안정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며 “동시에 중국 헌법이 전인대에 부여한 권한이자 책임”이라고 말했다. 왕 부장은 이어 “어느 나라에서나 조국에 충성을 다하는 것은 공직자와 공직에 출마하는 사람들이 지켜야할 기본 정치 윤리”라고 덧붙였다.
중국에서 홍콩·마카오 문제를 총괄하는 한정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겸 부총리도 이날 베이징에서 전인대 홍콩 대표단을 면담했다. 그는 “2019년 홍콩에서 벌어진 사회적 혼란이 재연되지 않도록 선거제를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부총리는 전날 중국 최고 자문기구인 정협 홍콩·마카오 대표단을 만난 자리에선 홍콩 문제에 관한 중국 정부의 3단계 계획을 언급하기도 했다. 홍콩에서 폭력과 혼란을 저지하고 선거제를 개편한 다음 경제·민생·주택 등 문제 해결에 전념하는 내용이다.
중국 정부의 이런 로드맵은 착착 진행되고 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전인대가 이번에 선거제 개편 결정안을 의결하면 전인대 상임위원회가 그에 맞게 홍콩 기본법을 개정하고, 이어 홍콩 당국이 관련법을 고친 뒤 이를 홍콩 의회에 제출하는 수순을 예상했다. 지난해 중국 전인대가 홍콩 내 반정부 활동을 처벌하는 내용의 홍콩보안법을 직접 제정하기로 결정한 뒤 밟았던 과정과 유사하다. 당시 홍콩보안법 제정 결정은 전인대 투표에서 만장일치에 가까운 압도적 찬성(반대 1표)으로 통과됐다.
홍콩 매체에 따르면 선거제 개편안은 행정장관과 입법회 선거를 겨냥하고 있다. 행정장관 선거인단 수를 늘리되 민주 진영이 장악한 구의원 몫을 없애는 내용이다. 또 입법회 의석도 70석에서 90석으로 늘리고 이중 3분의 1을 행정장관 선거인단 중에서 뽑는 안도 거론된다. 홍콩의 행정 최고 수장과 의회 인사들을 친중 인사로 채우겠다는 의미다.
홍콩보안법 시행으로 이미 민주진영 인사들이 대거 체포·구금된 홍콩 야당은 속수무책 분위기다. 이제는 선거에 출마하는 것조차 막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선거제 개편안 중에는 출마자의 자격을 심사하는 고위급 위원회 설치도 포함돼 있다.
홍콩 최대 야당인 민주당의 로킨헤이 주석은 홍콩 매체 명보에 “선거제가 개편되면 민의를 대변할 대표들이 설 자리는 좁아질 것”이라며 민주당이 후보를 내는 문제에 대해 숙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