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폭력을 당했지만 ‘쌍방 폭행’이라는 학교폭력위원회의(학폭위) 판단에 가해자로 몰린 10대 청소년이 1년에 걸친 소송 끝에 ‘가해 학생’이란 오명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1년의 세월은 피해 학생에게도 그 가족에게도 고통의 시간이었다.
A군의 변호를 맡았던 이지헌 변호사는 5일 국민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가해 학생과 학교의 잘못된 판단으로 피해 학생은 물론 그 가족까지 큰 피해를 입은 안타까운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건 초기에 학교가 적극적으로 피해 학생을 보호하고 가해 학생이 충분한 사과를 했으면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었다”며 “학교 측에서 이 사건을 쌍방폭행으로 처리하는 등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가해 학생은 사과는커녕 본인이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사태를 악화시켰다”고 전했다.
피해자는 어떻게 가해자로 둔갑했나
이 변호사가 전하는 당시 사건의 전모는 이랬다. 서울 양천구의 한 중학교 축구팀 소속이던 A군(17)은 2019년 8월 지방에서 열린 축구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합숙소에 입소했다. 사건 당일 A군을 평소 괴롭히던 B군은 그를 ‘돼지새끼’라고 놀렸고, A씨는 거듭 그만하라는 의사를 표했다. 그런데도 B군이 놀리면서 접근하자 손으로 밀쳐냈다. 이에 화가 난 B군이 A군의 얼굴을 주먹으로 구타하고, 머리를 팔로 감싸안고 조르며 넘어뜨렸다. A군은 치아가 일부 깨지고 얼굴에 멍이 드는 등 전치 2주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학교 측은 A군 부모에게 ‘아이들끼리 다툼이 있었다’고만 알렸다. A군이 다쳤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심지어 A군을 병원에 데려가지도 않았다.
A군 부모는 엉뚱한 곳에서 아들의 피해 사실을 듣게 됐다. 그날 밤 11시쯤 B군의 부모에게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안녕하세요. B군 엄마입니다. 코치에게 들었습니다. 우리 아이로 인해 댁 아드님이 다쳤다고 합니다.’라는 내용이었다.
A군 부모는 코치가 찍어 보낸 사진을 통해 아들의 상태를 확인했고, 다음 날 아침 숙소를 찾아가 아들을 병원에 데려갔다.
이후 A군 부모는 학교에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보름이 지나도록 학교는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다. 결국 A군 부모는 학교를 직접 찾아가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개최를 신청했다. 석 달이 지나 열린 학폭위는 해당 사건을 ‘쌍방 폭행’으로 판단해 B군에게 전학 처분을, A군에게 서면사과 처분을 내렸다. 맞은 학생을 향해 때린 학생에게 사과하라는 처분이 나온 것이다.
이후 법원은 A군을 무혐의로 처분했고, B군의 혐의만 인정했다. 미성년자인 B군은 소년부로 송치돼 보호관찰 처분을 받았다. A군은 학교를 상대로 징계조치 처분 취소 소송을 냈고, 지난해 11월 서울행정법원으로부터 학폭위 구성부터 문제가 있다며 해당 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사건이 발생한 뒤로부터 1년이 넘게 흐른 시점이었다. 강서양천교육지원청도 뒤늦게 이 사건을 감사해 축구팀 감독 등 학교관계자 7명에게 징계 등의 ‘신분상 조치’ 처분 결정을 내렸다.
가해학생 부모의 투서에 직장 잃은 피해학생 부모
1년여간의 소송 끝에 A군은 ‘가해 학생’이라는 멍에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학교폭력은 A군과 가족들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A군은 소송을 진행하면서 축구팀 감독과 사이가 틀어져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 변호사에 따르면 감독은 되레 피해자인 A군을 질책하고, 학교에 해당 사건을 ‘아이들 사이에 벌어진 다툼’이라고 보고했다. 또 교육청 감사로 징계를 받자 ‘피해자 부모는 시끄러운 사람이다. 자식의 일을 침소봉대해 시끄럽게 한다’ 등 안 좋은 소문을 퍼뜨렸다.
축구선수를 꿈꾼 A군은 자신을 받아주겠다는 팀을 찾지 못해 발을 굴러야했다. 사건 이후 A군이 전학을 시도하자 몇몇 학교 축구팀에서 거절 의사를 내비쳤다. 다행히 A군은 올해 축구팀이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해 다시 공을 차고 있다.
타격은 A군 부모에게까지 미쳤다. 고등학교 축구팀 감독이었던 A군의 아버지 C씨는 가해 학생 부모의 투서에 직장을 잃었다. 이 변호사에 따르면 가해 학생 부모들은 C씨의 직장에 “자식이 학교폭력 가해자인데 소송을 거는 등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는 취지의 투서를 보냈다. A군이 B군의 목을 졸랐다는 음해성 투서가 줄이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지도자에게 학교폭력 관련 투서는 치명적이었다. 팀 창단 이후 처음으로 전국대회 우승까지 이끌었지만 소용없었다. 계속되는 투서에 C씨는 재계약에 실패했다. 최종 심사까지 올라간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 직에서도 떨어졌다.
A군 가족은 다른 학부모들에게도 비난을 받았다. A군 동료 학부모는 SNS에 “쓰레기 가족들 때문에 모든 선수들이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심지어 A군 사건으로 당시 중학교 감독이 징계를 받자 “교육청 징계가 잘못됐다. A군 학부모가 나쁜 사람들”이라며 구명 집회까지 열렸다.
이에 대해 이 변호사는 “운동부 특성상 문제가 생겨 외부에 드러나게 되면 출전 정지, 운동부 해체 등 징계를 받게 된다”면서 “같은 동료 학부모나 운동부 선수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 오히려 피해 학부모를 비난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고등학교 선수들은 계속 경력 관리를 해야 하는데 추천 등 진학에 있어 감독의 입김이 너무 세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