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이 사의를 밝힌 다음 날인 5일 현직 검사가 박범계 법무부 장관에게 “살려주십시오”라며 읍소하는 글을 올려 비판했다.
5일 박노산 대구서부지청 형사2부 검사(37.사법연수원 42기)는 오전 10시쯤 검찰 내부 게시판인 ‘이프로스’에 ‘법무부 장관님, 살려주십시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는 지난해 11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이었던 박 장관이 국정감사에서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에게 예산과 관련해 “(삭감 예산을) 살려야 하지 않겠나. ‘의원님 꼭 살려주십시오’ 절실하게 한 번 해보시라”고 말한 것을 풍자한 것으로 보인다.
박 검사는 “참다못해 빼 드신 법무부 장관님과 장관님 동지분들의 칼날에 목이 날아가게 생긴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참회하는 마음이 들었다”라며 “때가 한참 늦었지만, 저의 철없던 행동에 대한 용서를 빌며 검찰 동료들의 비뚤어진 마음도 올바른 길로 되돌리고 싶다”라고 글을 시작했다.
이어 “소인은 여지껏 검찰개혁, 검찰개혁 말만 들었지 구체적으로 바람직한 검사가 마땅히 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 장관님의 뜻을 들은 바가 없사와, 이렇게 장관님의 명을 경청하고 받들어 비천한 목숨이라도 연명하고자 키보드를 들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아둔한 소인이 나름대로 헤아려 본 장관님의 세 가지 뜻이 맞는지 고개만 끄덕여주신다면, 저희 검찰 기필코 이를 지켜 결자해지할 터이니 한 번만 기회를 주시옵서소”라고 했다.
먼저 박 검사는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언급하며 “현재 중대 범죄로 취급해 수사 중인 월성 원전 사건, 라임·옵티머스 사건, 김학의 출국금지 사건 등에 대해 수사를 전면 중단함은 물론 재판 중인 조국 전 장관과 그 가족 등의 사건, 울산시장 하명수사 사건 등에 대해서도 모두 공소를 취소하면 검찰을 용서해주시겠는가”라고 박 장관에게 물었다.
이어 “당연히, 앞으로도 어떠한 중대범죄, 부패범죄가 눈앞에 나타나더라도 조용히 묻어버리고 수사를 금하며 그러한 사실이 절대로 밖에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라며 “이렇게 하면 되겠습니까?”라고 비꼬았다.
박 검사는 두 번째로 “이제부터 저희 검찰은 분수를 알고, 일반 국민들에 대해서는 추상같이 수사하되, 아무리 의심이 들더라도 청와대나 국회의사당 그 밖의 고관대작님들 이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사건은 감히 그 용안 서린 기록을 쳐다보지도 않겠나이다”라며 “이렇게 하면 혹 저희를 다시 품어주시겠나이까?”라고 썼다.
아울러 “이제부터 저희 검찰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낡아빠진 속담이나 ‘범죄 없는 깨끗한 권력’에 대한 허황된 꿈은 버리고 ‘유권무죄 무권유죄’를 표어로 삼아 군림하지 않는 겸손한 자세로 작금의 한국적 민주주의를 꽃 피우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저희를 명실상부한 검찰개혁의 주체로 인정해주시겠습니까?”고 거듭 물었다.
박 검사는 마지막으로 ‘검찰이 수사를 하고 그 결과를 스스로 평가하여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모순’이라고는 여권 측 주장에 대해 “제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기소 여부 결정’이 목적이라면 당연히 사실관계와 법리를 조사해보아야 할 것이고 그게 바로 ‘수사’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어디가 잘못된 것인지 콕 짚어 주소서”라고 했다.
그는 “판사가 재판절차를 진행했으면 그 결과를 스스로 평가해 판결을 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말씀을 하신 게지요?” 등의 예를 들었다. 이어 “장관님과 동지분들께서 모든 행정, 사법기관의 처분권한과 이를 위한 조사권한을 사분오열시키는 법을 만들어주시기만 하면, 저희 검찰도 이를 차질 없이 집행하여 모순 없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앞장서겠습니다”라고 했다.
박 검사는 “글을 올리다 보니 소인의 무지함에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부끄럽습니다”라며 “미리미리 공부해 중대범죄 수사도 스스로 금하고, 분수를 알아 높으신 분들의 옥체를 보존하며, 모순되는 행동을 삼갔어야 했건만, 왜 장관님과 높으신 분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드렸을까”라고 했다.
이어 “다행히 장관님께서 검찰 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주시겠다고 먼저 길을 터주시어 위와 같이 여쭙나니, 바라옵건대 장관님의 고매한 뜻을 감추지 마시고 허심탄회하게 하명해주시면 저희 검찰, 다시는 거역하지 아니하고 완수하겠나이다”라며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라며 글을 마무리했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