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수사 멈추면 용서하느냐” 평검사 ‘검수완박’ 반발

입력 2021-03-05 11:10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사퇴한 뒤 검찰 청사를 떠나며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직 형사부 평검사가 5일 “월성 원전 사건과 김학의 출국금지 사건 등의 수사를 전면 중단하면 검찰을 용서해주겠느냐”며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추진에 대한 비판글을 검찰 내부망에 올렸다. 전날 윤석열 검찰총장은 여권의 검찰 수사·기소 분리, 중대범죄수사청 도입 추진 등에 반발해 사퇴 입장을 밝혔다.

대구에서 근무하는 형사부 소속 A검사는 이날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조선 시대 상소문 형식을 차용해 “법무부 장관님, 살려주십시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소인은 여지껏 검찰개혁, 검찰개혁 말만 들었지 구체적으로 바람직한 검사가 마땅히 할 바가 무엇인지 장관님 뜻을 들은 바가 없사와, 이렇게 장관님의 명을 경청하고 받들어 비천한 목숨이라도 연명하고자 키보드를 들었다”며 글을 시작했다.

A검사는 먼저 “현재 중대범죄로 취급하여 수사 중인 월성원전 사건, 라임·옵티머스 사건, 김학의 출국금지 사건 등에 대하여 수사를 전면 중단함은 물론, 현재 재판 중인 조국 전 장관과 그 가족 등의 사건, 울산시장 하명수사 사건 등에 대해서도 모두 공소를 취소하면, 저희 검찰을 용서해주시겠습니까”라고 질문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어떠한 중대범죄, 부패범죄가 눈앞에 나타나더라도 조용히 묻어버리고 수사를 금하며 그런 사실이 절대 밖에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하겠다”며 “이렇게 하면 되겠느냐”고 되물었다.

더불어민주당이 수사·기소권 분리 등을 포함한 검찰청법 및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추진 중인 데 대해서는 “입법안을 보니 검찰이 막강한 권한을 갖고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군림했다고 썼던데, 그건 참말 큰 오해”라고 말했다. 이어 “저희는 그저 심히 무지한 탓에 범죄가 의심되면 사람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수사함이 본분인 줄 알았을 뿐”이라며 “높으신 분들을 수사하면 반역이 된다는 것은 꿈이도 몰랐으니 소신들의 우매함을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소서”라고 덧붙였다.

A검사는 또 “이제부터 저희 검찰은 분수를 알고, 일반 국민들에 대해서는 추상 같이 수사하되 아무리 의심이 들더라도 청와대나 국회 그 밖의 고관대작들 이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사건은 감히 그 용안 서린 기록을 쳐다보지도 않겠다”며 “이렇게 하면 혹 저희를 다시 품어주시겠나이까”라며 비꼬아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부터 검찰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낡아빠진 속담이나 ‘범죄 없는 깨끗한 권력’에 대한 허황된 꿈은 버리고 ‘유권무죄 무권유죄’를 표어로 삼아 군림하지 않는 겸손한 자세로 작금의 한국적 민주주의를 꽃 피우겠다”며 날을 세웠다.

검찰이 수사와 기소를 독점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판사가 재판절차를 진행했으면 그 결과를 스스로 평가해 판결하는 것도 모순”이냐고 반문했다. 경찰이 수사 후 송치 또는 불기소하는 것이나 회사 경영진이 시장조사를 열심히 진행한 뒤 경영 결정을 하는 것도 모순이 아니냐고도 말했다. A검사는 그러면서 “왜 저번에 만드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수사를 하고 나서 스스로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냐”고 지적했다.

A검사는 글 말미에서 “미리미리 공부해 중대범죄 수사도 스스로 금하고, 분수를 알아 높으신 분들의 옥체를 보존하며, 모순되는 행동을 삼겄어야 했건만, 왜 장관님과 높으신 분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드렸을까 (했다)”며 “소인의 무지함에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부끄럽다”고 적었다. 그는 “장관님께서 검찰 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주겠다고 먼저 길을 터주셨으니, 고매한 뜻을 감추지 마시고 허심탄회하게 하명해주시면 다시는 거역하지 않고 완수하겠다”며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글을 마무리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