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문화된 ‘북한인권법’ 시행 5년…정부 이행의지는 어디로

입력 2021-03-03 05:00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적십자사 앙리 뒤낭홀에서 '상생과 평화의 한반도 생명·안전공동체 구축'을 주제로 열린 대한적십자사·남북교류협력지원회 공동 세미나에서 축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주민들의 인권 개선을 위한 북한인권법이 국내에서 제정된 지 3일로 5주년을 맞았지만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이 법이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일각에선 정부가 최대 과제인 한반도평화프로세스에 치중하느라 북한 인권 개선은 등한시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 인권 저하를 대북제재 탓으로 돌린 주무부처 장관의 발언이 국제사회로부터 뭇매를 맞는 등 북한 인권 문제를 대하는 우리 정부의 태도가 우려를 사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2005년 발의된 북한인권법은 여야 이견으로 11년간 표류하다가 2016년 3월 3일 국회를 통과했다. 북한인권법 제정 이후 1년만에 문재인정부가 출범했으나 이 법은 제정 5년을 맞이한 현재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법에 규정된 ‘북한인권재단 설립’은 재단 이사진 구성이 이뤄지지 않아 출범조차 못하고 있다. 이사진 12명 중 여야가 각각 5명, 통일부 장관이 2명을 추천해야 하는데, 여당 몫의 5명과 여당 의원 출신인 이인영 통일부 장관 몫 2명 등 총 7명의 이사진이 추천되지 않고 있다. 최근 국민의힘은 야당 몫의 이사 5명을 단독 추천했고, 국민의힘 소속 지성호 의원은 이사가 추천되면 통일부 장관이 1개월 내 임명토록 하는 내용의 북한인권법 개정안을 2일 대표발의했다.

법에는 이와 함께 ‘북한인권증진을 위한 국제적 협력’을 위해 외교부에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를 두도록 돼 있지만 의무조항이 아니다 보니 초임 이정훈 대사가 2017년 9월 임기를 만료한 이후 지금까지 인선이 이뤄지지 않았다. 북한인권대사는 외교부 장관이 대통령에 제청해야 인선 과정이 진행된다.

법에 근거해 탄생한 통일부 산하 북한인권기록센터는 비공개로 북한인권 실태보고서를 발간한 게 전부다. 그러나 최근엔 이런 기록물의 신빙성을 의심하는듯한 발언을 해 논란의 중심에 선 이인영 장관이 탈북민들로부터 명예훼손 고소까지 당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북한 인권에 큰 관심이 없던 터라 그동안 국내에서도 북한인권법을 집행할 동력이 떨어졌었다. 그러나 인권을 중시하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미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지난 1일(현지시간) 북한인권특사 임명 계획을 묻는 미국의 소리(VOA) 질문에 “바이든 행정부 외교정책 우선순위에 맞춰 특사 직책을 유지하고 채우는 문제를 살펴볼 것이고, 여기엔 ‘북한인권특사’ 직책이 포함된다”며 임명 가능성을 다시 한번 시사했다. 유엔인권이사회에선 북한인권결의안 채택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낸 만큼 공동제안국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반해 우리 정부는 2019년부터 2년 연속 공동제안국에 불참했고 올해도 참여 여부를 결정하지 않아 3년 내리 이름을 올리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엔 “대북제재 때문에 북한 주민의 삶이 어려워졌다면 짚고 넘어가야 한다”며 대북제재가 북한 인권 저하의 원인 중 하나란 취지의 이 장관 발언에 대해 미 국무부가 “제재가 아닌 북한의 지나친 코로나19 방역 조치가 문제”라고 반박했다. 유럽연합(EU) 외교·안보정책 담당 대변인도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북한 취약계층이 직면한 경제, 사회적 어려움의 주된 책임은 북한 당국 정책에 있다”는 입장을 내는 등 우리 정부의 입장은 국제사회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 인권상황이 실질적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한·미 간에 협의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해나가려는 입장”이라며 “북한인권법도 취지에 맞게 이행될 수 있도록 국회 등과 계속 협의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