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1호 수사’의 선택 기준은 “중립성을 의심 받지 않을 사건”이라고 밝혔다. “선거를 앞두고 영향을 미칠 사건을 택해서 중립성 논란을 자초하는 일을 피해야하지 않겠느냐”며 ‘수사 신중론’도 펼쳤다. 김 처장이 섣부른 수사 착수보다 형사사법개혁 차원의 공수처 제도 안착을 강조하는 입장을 보이면서, 법조계에서는 ‘개점 휴업’이 길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김 처장은 2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포럼에서 ‘민주공화국과 법의 지배’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그는 강연 후 질의응답에서 “공수처 1호 사건이 무엇인지도 관심을 가져주셔야 하지만, 그보다는 공수처 제도가 법의 지배에 따라 초석을 마련하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종전 형사사법에서 잘 되지 않은 적법절차에 따른 수사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처장은 그간의 수사 관행을 겨냥해 “그동안 선거를 앞둔 수사로 중립성을 의심 받고 흔들린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선거에 영향을 주면 대의민주주의 작동에 수사기관에 개입한다는 의문을 줄 수 있다”며 “공소시효가 임박한 예외적 사건이 아니면 선거가 끝난 후 발표하는 방식으로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다만 “일괄적으로 수사를 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고 단서를 달았다.
“법원에서 통하지 않는 수사는 옳은 수사가 아니다”는 기준도 언급했다. 법관 출신인 김 처장과 여운국 차장이 수사 경험이 없다는 우려에 대한 답변이었다. 김 처장은 “수사인력을 충분히 잘 구성하면 해결될 문제”라고 했다.
공수처와 검찰의 관계 설정에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구도를 언급했다. 김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생겨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신장하는 역할을 하자 대법원 판결도 전향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했다. “공수처와 검찰도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김 처장의 전망이었다.
중대범죄수사청 도입에는 신중론을 폈다. 김 처장은 “입법사항이라 입장 내는 게 적절한지 모르겠다”면서도 “국민의 입장에서 불편을 겪거나 피해볼 점 등이 잘 알려져야 한다”며 “시간을 두고 제도가 생기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여권 일각의 속도전에는 회의적 입장을 보인 셈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특정 단체 출신이 공수처로 대거 유입될 것을 우려하는 일각의 목소리에는 “공정하고 정치적 중립성의 의심이 없는 분들로 잘 선발하겠다. 인사위원회가 여야 합의로 잘 작동하는 모습을 기대한다”며 정치권의 역할을 주문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임기를 완수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초대 처장이기 때문에 임기를 지키지 않으면 제도 안착에 상당히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답했다. 수사에 대한 국민 여론이 첨예하게 나뉠 경우에는 “공개된 곳에서 의견을 다 공평하게 듣는 방식으로 중립성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대통령과 ‘핫라인’, 즉 직통전화를 만들 것인지 여부에는 “없고, 없을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식사를 요청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그런 식사 요청은 없을 것이다”고 답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