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비종교적 신념에 따른 예비군 훈련 거부 첫 인정

입력 2021-02-25 12:48

종교적 신념이 아니라 개인의 신념을 이유로 예비군 훈련을 거부했을지라도 ‘진정한 양심’에 따른 거부일 경우 처벌해선 안 된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윤리·도덕·철학적 신념도 예비군 훈련을 거부할 만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할 수 있다는 취지다.

대법원 1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25일 병역법 위반, 예비군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2016년부터 2018년까지 16차례에 걸쳐 예비군 훈련에 불참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예비군법은 정당한 사유 없이 예비군 훈련을 거부하면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1심과 2심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씨에게 예비군 훈련을 거부할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A씨가 어린 시절 폭력적인 아버지와 그로 인해 고통을 겪은 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해 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됐다”며 “미군이 헬기에서 기관총을 난사해 민간인을 학살하는 동영상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후 여러 매체를 통해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잘못이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라는 신념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군 입대를 거부할 결심을 하고 있는데 입영 직전 어머니와 친지들이 간곡한 설득으로 군에 입대했다”며 “군 입대 이후 훈련 중 총 쏘는 것은 자신의 양심에 반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깨닫고 입대를 후회하고, 군사훈련을 받지 않을 수 있는 회관 관리병으로 지원해 군복무를 마쳤다”고 했다.

재판부는 “병역 의무 중 가장 부담이 크다고 할 수 있는 현역 복무를 이미 마쳤음에도 예비군 훈련 만을 거부하기 위해 수 년간의 조사와 재판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과 형벌의 위험, 안정된 직장을 얻기 어려워 입게 되는 경제적 어려움 등을 모두 감수했다”며 “양심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것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소명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종교적 신념이 아닌 윤리적·도덕적·철학적 신념 등에 의한 경우라도 그것이 진정한 양심에 따른 예비군훈련과 병력동원훈련 거부에 해당한다면 예비군법에서 정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