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근로자의 유급휴가 시기지정권 및 사용자의 시기변경권에 관하여

입력 2021-02-24 15:07
박보영 법부법인 성헌 대표변호사

연차 유급휴가에 관한 근로기준법 제60조 제5항 전문은 「사용자는 제1항부터 제4항까지의 규정에 따른 휴가를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줘야 하고 그 기간에 대해서는 취업규칙 등에서 정하는 통상임금 또는 평균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휴가 시기를 근로자가 정할 수 있는 권리, 즉 시기지정권을 규정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휴가는 근로자의 권리이다. 위 규정에 따라 사용자는 근로자의 연차유급휴가권의 행사를 방해하지 않을 부작위 의무를 부담하게 된다.

그러나 시기 지정의 형식이나 절차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단서에서「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휴가를 주는 것이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에는 그 시기를 변경할 수 있다.」라고 함으로써 근로자의 시기지정권 행사에 대응한 사용자의 시기변경권을 함께 규정하고 있다. 이는 근로자에게 휴가 사용에 대한 시기지정권이 있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그 시기에 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사업 운영상 막대한 지장을 주는 경우에 한해 근로자의 시기지정권이 사용자에 의해 제한될 수 있음을 정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근로기준법에서 구체적인 방법을 규정하고 있지 않음으로 인해 적절한 시기지정권 내지 시기변경권 행사를 했는지 여부는 오로지 사법 판단에 의해 확인할 수밖에 없다. 적절한 시기지정권 내지 시기변경권 행사를 위해서라도 단체협약상 최소한의 제한 조치를 마련해 두는 것은 근로기준법의 취지에 비춰 볼 때 타당하다고 본다.

단체협약은 노조법 제33조에 의해 사용자와 개별 근로자 사이의 근로계약을 규율하는 규범적 효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규범적 효력은 개별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의 사적자치의 원칙을 제한하고 단체협약자치의 원칙을 승인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협약자치의 원칙상 노동조합은 사용자와 사이에 근로조건을 유리하게 변경하는 내용의 단체협약뿐만 아니라 근로조건을 불리하게 변경하는 내용의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으므로, 근로조건을 불리하게 변경하는 내용의 단체협약이 현저히 합리성을 결하여 노동조합의 목적을 벗어난 것으로 볼 수 있는 경우와 같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러한 노사간의 합의를 무효라고 볼 수는 없고, 노동조합으로서는 그러한 합의를 위해 사전에 근로자들로부터 개별적인 동의나 수권을 받을 필요가 없으며, 단체협약이 현저히 합리성을 결하였는지 여부는 단체협약의 내용과 그 체결경위, 당시 사용자측의 경영상태 등 여러 사정에 비추어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함으로써(대법원 2000. 9. 29 선고 99다67536 판결 참조) 근로조건을 불리하게 변경하는 내용의 단체협약일지라도 현저히 합리성을 결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유효한 것으로 보고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판결 선고된 예를 살펴보면 A는 시내버스 여객운수업 법인의 대표이사이고 B는 승무원인데, B는 A에게 연차유급휴가를 2일 전에 신청했다. 이에 대해 A는 단체협약에 따라 3일 전 연차유급휴가신청을 하지 않아 해당 신청에 대해 시기변경권을 행사했는데, B가 수용하지 않자 A는 결근 처리했다. B는 이러한 결근 처리가 근로기준법 제60조 제5항에 위반한다는 이유로 A를 관할 노동청에 고소했다. 검사는 수사 후 A를 근로기준법위반으로 약식명령해 A가 정식재판청구한 사례가 있다.

위 사건의 핵심 쟁점 중 하나는 A의 사업장이 속한 사업자조합과 근로자대표노동조합사이에 체결된 단체협약서 제18조의 「종업원은 회사에 연차휴가 또는 유급휴가에 의한 해당휴가 신청을 3일 전에 서면으로 제출해야 한다」라는 규정의 적법여부이다. 이러한 단체협약을 체결하게 된 주요 원인은 최근 근로기준법이 개정돼 근로시간 및 휴게시간 특례업종에서 운송업이 제외되면서 1주일을 토요일과 일요일이 포함된 7일이라고 정의하면서 1주 최대 근무시간이 기존 주 68시간에서 주 52시간으로 줄어들게 됐다. 이에 따라 A의 사업장은 기존 주(週)배차에서 월(月)배차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확정된 월(月) 배차 일정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3일 전에 연차휴가를 신청해야 예비승무원을 찾아 대체인력을 찾을 수 있다는 사정이 반영된 것이다.

A가 정식재판청구해 단체협약에 따른 것으로 법위반에 대한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하자, 검찰측은 수원지방법원 판결(2018고정1290)을 근거로「단체협약에 휴가신청기한을 정하고 있더라도 근로자의 연차유급휴가권은 근로기준법 제60조 제1항의 요건을 갖추면 당연히 성립하는 것이므로 단체협약에서 신청기한을 정하여 연차유급휴가권의 행사를 제한하더라도 이는 근로기준법 제60조에 규정된 강행법규에 위반되어 효력이 없어 보인다.」라는 점을 들어 A의 주장에 반대했다.

이러한 검사의 주장에 대해 A의 변호인은「휴가를 받고자 하는 자는 사전에 소속장에게 신청해 대표이사의 승인을 득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은 근로기준법 이 규정하는 근로자의 휴가시기지정권을 박탈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용자에게 유보된 휴가시기 변경권의 적절한 행사를 위한 규정이라고 해석되므로 위 규정을 위 근로기준법 규정에 위반되는 무효의 규정이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불특정다수인을 상대로 하는 정기여객운송사업 특성상 운전사로 하여금 미리 유급휴가신청을 하게하고 대표이사의 승인을 받아 휴가를 실시하도록 한 것은 사용자의 휴가시기변경권을 적절하게 행사하기 위한 필요한 조치라고 할 것」이라고 판시한 점(대법원 1992. 6. 23. 선고 92다7542 판결)을 근거로 검사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에 A가 근로기준법 제60조 제5항 단서의 시기변경권을 적법하게 행사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A의 적법한 시기변경권 행사에도 불구하고 B가 일방적으로 이를 거부해 결근 처리를 한 것은 적법하다고 주장했다.

결국 법원은 A에 대해 ▲단체협약, 취업규칙 등에서 연차휴가에 관한 시기지정권 행사의 기한을 정해 뒀다고 해 반드시 위법하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 ▲피고인으로서는 단체협약의 효력을 신뢰해 공소사실 기재 휴가신청이 단체협약에 반한다고 판단, 연차휴가를 부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점 ▲피고인의 행위가 시기지정권을 침해한 것이라거나 피고인이 연차유급휴가를 부여하지 않음에 있어 근로기준법 위반의 고의 또는 위법성의 인석이 있었다고 단정하기도 곤란한 점 등을 고려해 피고인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 했다.

위 판례에서 인정된 바와 같이 이 사건에서 문제된 단체협약 제18조에서 근로자의 휴가사용으로 인한 사업 운영상의 차질을 최소화하고, 그에 따른 인력 재배치를 위해 ‘3일’이라는 시기지정권 행사에 최소한의 기간을 정한 것은 사용자의 시기변경권의 적절한 행사를 위한 규정으로서 근로기준법 규정에 위반되는 무효의 규정이라고 할 수 없다. 근로기준법은 최소한의 기준으로서 존재하고(근로기준법 제3조), 동법에서 근로자의 시기지정권에 대응하는 사용자의 시기변경권을 규정함으로써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을 피하기 위한 제한을 인정하고 있으므로(근로기준법 제60조 제5항) 단체협약상 ‘3일’이라는 시기지정권 행사의 기한을 두고 있는 것은 연차유급 휴가의 사용에 관한 근로자의 시기지정권을 침해하지 않은 범위에서 인정되는 최소한의 제한이라고 볼 것이기 때문이다.

박보영 법무법인 성헌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