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묶여있는 이란 돈 7조8000억원… 미국의 ‘이란 압박’ 카드 되나

입력 2021-02-24 13:29 수정 2021-02-24 16:22
미국, 이란 제재로 자금 동결… 미국, 동의해야 지급 가능
한국·이란, 의견 접근… 구체적 금액에선 이견 노출
미국·이란, ‘이란 핵합의’ 복귀 놓고 줄다리기
미국, 이란과 협상서 동결자금 압박 카드로 활용 분석

이란의 시위대들이 2018년 1월 5일 테헤란에서 반미 시위를 펼치면서 모형 성조기를 불태우고 있다. AP뉴시스

한국에 묶여있는 이란의 원유수출 대금 70억 달러(7조8000억원)를 놓고 ‘한국·이란·미국’ 3국 사이에 복잡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한국과 이란은 동결자금 일부를 지급하는 데 의견 접근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양국의 발표에는 온도차가 감지된다.

미국은 결정적인 변수다. 한국에 이란의 원유대금이 묶인 것은 미국의 이란 제재 때문이었다. 한국이 이란에 돈을 보내기 위해선 미국 정부의 승인이 필요한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이란은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복귀 문제와 관련해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이 한국에 동결된 이란 원유수출 대금을 이란과의 협상에서 압박 카드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 국무부의 네드 프라이스 대변인은 23일(현지시간) 한국에 동결된 이란 자금과 관련해 “한국과 폭넓은 협의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아직 어떤 돈도 송금되지 않았다”면서 “우리는 다른 나라들(한국·이란) 간의 양자 협상에 관해 언급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거리를 뒀다.

이란은 2010년 이란 중앙은행 명의로 IBK기업은행과 우리은행에 원화 계좌를 개설하고 이 계좌를 통해 원유수출 대금을 받아왔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2018년 이란 중앙은행을 제재 명단에 올리면서 이 계좌를 통한 거래가 중단됐다.

이란으로선 한국으로부터 돈을 받을 루트가 막힌 것이다. 이란이 지난달 오만 인근 해역에서 한국 화학 운반선 ‘한국케미’호를 나포했다가 선장을 제외한 선원들을 석방한 것도 동결자금 해제를 압박하기 위한 액션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국과 이란은 물밑협상을 통해 일부 타협점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내용을 살펴보면, 의견 차도 느껴진다.

알리 라비에이 이란 정부 대변인은 “한국이 미국의 제재로 한국의 은행에서 출금이 동결된 이란 자산을 풀어주는 데 동의했다”면서 “첫 번째 조치로 우리는 이란 중앙은행의 자산 10억 달러(1조1100억원)를 돌려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 외교부는 “이란이 우리가 제시한 방안에 동의 의사를 표명하는 등 기본적인 의견접근이 있었다”면서 “실제 동결자금의 해제는 미국 등 유관국과의 협의를 통해 이루어져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부는 10억 달러 등 구체적인 금액에 대해선 정해진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은 이란의 발표 이후 미국과의 협의 없이 이란과 동결자금 송금에 합의했다는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미국 정부에 상황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이 이란에 동결자금을 송금하는 데 결정적인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현재 트럼프 전 대통령이 탈퇴했던 이란 핵합의 복귀를 추진하고 있으나 진척이 없다. 미국은 핵 활동 제한 등 핵합의 내용을 이란이 준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란은 제재 해제를 먼저 주장하고 나섰다.

미국이 이란과의 샅바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한국에 있는 이란 동결자금을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한국에 묶여있는 이란 원유대금 문제는 결국 미국·이란 사이의 핵합의 진척 속도에 따라 좌우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국은 이란에 동결자금을 주고 싶어도 미국의 동의가 없으면 송금할 수 없는 현실적 제약 속에 있다. 미국과 이란 사이의 의견대립이 장기화될 경우, 이란 동결자금 문제 해결도 더뎌질 수밖에 없다는 전망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