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비리로 탈락 보상 ‘1000만원’…근로자 지위 청구는 ‘기각’

입력 2021-02-21 14:37 수정 2021-02-21 14:56
부정채용 등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오현득 국기원장이 1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후 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2014년 국기원 경력직 채용시험에서 1순위로 평가받았지만 채용비리로 탈락한 지원자에게 국기원 등이 10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7부(부장판사 이상주)는 최근 A씨가 국기원과 국기원 오현득 전 원장, 오대영 전 사무총장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고들은 원고에게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국기원은 2014년 산하 연수원에 경력직 1명과 신입직 1명을 뽑기로 하고 공개채용을 실시했다. 채용 전형은 1차 서류 심사, 2차 PT 발표 및 영어 능력평가, 3차 최종면접으로 이뤄졌다.

1차 합격자가 발표될 때쯤 오 전 원장과 오 전 사무총장은 모 국회의원 후원회 관계자의 아들 박모씨를 신입직 채용에 합격시키려고 2차 시험지를 사전에 유출했다.


하지만 박씨는 미리 시험지를 받고도 독해 번역시험에서 제대로 답안을 작성하지 못했다. 결국 직원이 답안을 대신 작성했고 최종 평가에서 박씨는 최고 점수를 받아 신입직 채용 1순위에 올랐다.

당시 A씨는 경력직 채용에서 1순위에 올랐다.

그러나 오 전 원장 등은 국기원 연수원장에게 경력직 지원자들의 영어 성적이 부진하다면서 신입직 2명을 채용하자고 보고했다. A씨 역시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피고는 채용비리가 신입직 부문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경력직 채용과 인과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서울 강남구 국기원 전경. 국기원 홈페이지 캡처

재판부는 “박씨를 1순위로 만들긴 했으나 외국어 능통자를 필요로 하던 상황에서 월등히 영어 성적이 뛰어났던 B씨(실제 신입직 1순위)를 탈락시킬 수도 없었기에 원고를 탈락시켰던 것”이라고 봤다.

또 “이 사건 채용비리는 불법 행위에 해당하고 그로 인해 경력직 채용 예정 인원이 1명에서 0명으로 변경됐다”며 “채용 절차의 공정한 진행을 통해 평가받을 기회와 합리적 기대를 침해한 것으로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누구를 직원으로 채용할 것인지는 원칙적으로 피고 국기원의 자유의사 내지 판단에 달려 있고 채용비리가 없었더라도 원고가 당연히 최종 합격자로 결정됐을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며 근로자 지위 확인 청구는 기각했다.

김이현 기자 2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