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8개월 돌아본 박용만 “규제 큰물꼬 못 바꿔…정치 안 할 것”

입력 2021-02-21 12:00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샌드박스를 통해 법과 규제를 바꿔야 하는 당위성을 입증했다”면서도 “규제의 큰 물꼬를 못 바꾼 것은 안타깝다”고 퇴임 소회를 밝혔다.

박 회장은 지난 18일 출입기자단과 가진 퇴임 기자간담회에서 “재임 기간 7년 8개월 동안 가장 절실하게 호소한 게 법과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라며 “상상하지 못한 기술과 사업이 태동하고, 기존 사업도 새롭게 융합하는 시대에 기존 법과 제도로 미래를 담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재임 기간 중 가장 큰 성과로 꼽히는 샌드박스에 대해 “법과 제도를 우회해 일을 벌이고 법과 제도를 바꿀 당위성을 찾자는 게 샌드박스였다”면서 “대통령께서 전폭적으로 수용해서 힘을 받게 됐고, 해보니 생각이 맞았단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규제 없애는 걸 기본으로 하고 왜 존치해야 하는지를 입증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인데 그런 큰 물꼬를 못 바꿨다”면서 “매번 단기 이슈가 등장해 장기적인 시각의 이야기가 매몰됐다”고 아쉬워했다.

박 회장은 경제단체의 활동에 대해 “목소리 크기나 반대 의견을 강력하게 표현하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며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관계를 내놓고 찬반을 논의하고 지지를 받아야 하는 시기”라며 “사실관계를 모르는 상황에서 누구 목소리가 더 크냐를 보고 판단하는 건 맞지 않는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후임 최태원 SK그룹 회장에 대한 기대도 드러냈다. 박 회장은 “4대 그룹의 회장이 상의 회장이 되셨으니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며 “기업 규모가 상당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SK는) 4차 산업혁명에 가까운 업종이다”면서 “상의 회장을 구성하는 것만 봐도 미래 산업에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에 미래 방향에 대해 나보다 훨씬 잘 대변해줄 수 있는 식견을 가지고 있다고 봤다”고 언급했다.

박 회장은 “사회에 선한 영향을 주거나 젊은이의 꿈을 도와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퇴임 이후의 계획에 대해 말했다. 그는 “경험에서 우러나는 조언을 하라고 하는데 내가 가진 경험이 이 시대에 맞는지에 대한 자신이 없다”면서 “대신 가서 설득도 해주고 만나야 할 사람이 있으면 만나주는 일은 가리지 않고 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단 정치에는 전혀 뜻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박 회장은 “기업인은 수십 년 간 효율, 생산성, 수익성을 따라가는 굳어진 사고 있는데 정치는 그걸로 재단할 수 없는 영역”이라며 “사업하는 사람이 정치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박 회장은 상의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총 161회, 847시간58분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직원과 보낸 시간이 271시간45분, 언론인과 만남에 231시간55분을 할애했다. 정부와 회의가 211시간, 국회 방문에 72시간45분을 보냈다. 국내외를 포함해서 스피치를 493회 했고 38개국을 방문해 53인의 해외 정상을 만났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